나는 술을 즐기는 편이다. 흔히 말하는 소주파. (잭다니엘 같은 싸구려 위스키나 와인도 좋아하긴 하지만)

소주파라기보다는 소주를 마셔야 덜 취하는 체질이다. 증류주가 몸에 맞나 보다. 

맥주를 마시면 빨리 취한다. 

 

대학시절에는 내가 술을 참 못하는 편인줄 착각했다. 보통 술이 약하면 맥주를 마시는데, 나는 맥주를 마시면 빨리 취하기 때문에 소주는 엄두도 못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며 '소주파'의 선배님들의 술잔에 맞춰 나도 소주잔을 부딪히다보니 

나의 주량이 소주 한병정도는 거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량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주량이 기준이 뭐지 싶은데,

나는 소주 두세잔부터 알딸딸해져서 한 병 반까지는 유지되고,

그 이후 두병정도 마시면 '꽐라'가 되어 비틀거린다. 

그래서 한병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항상 주량을 넘겨서 마시지. 각 1병 이런 건 잘 못한다. 

 

술에 취해서 험한 짓을 하기도 했지만 웃긴 일들도 많아서 좀 적어보고자 한다. 

 


 

 

1. 대학생 때 고등학교 친구들을 모아 미팅을 나간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술을 잘 못 마시는 애'로 스스로를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팅 자리에서 일단 언더라이스(밑밥)를 깔았다. 나 술 잘 못 마신다고. 

  그때 한참 이슬톡톡이 유행이었는데, 그 말을 듣더니 남자애들이 나의 벌주를 '이슬 톡톡'으로 주문해 주었다.ㅋㅋㅋ 그래서 나는 술게임을 하고 져도 '소주잔'에다가 이슬 톡톡을 마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만 해도 어이없고 웃기다. 이슬 톡톡이 3도인가 그런데, 그걸 소주잔에 마셨으니. 내 친구는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고 있는데 나는 술에 하다고 안 취해서 피곤하기만 했다. (원래 술자리에서 술에 취하지 않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는 듯) 

 

 

2.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서 잠든 적이 두 번있다. 한 번은 홍대의 한 벤치에서, 한 번은 아파트 단지에서 잠들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 꼭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데, 한 번은 택시를 잡지도 못하고 잠이 든 거고 한 번은 택시를 타고 잘 와 놓고 아파트 정문에서 우리 집 아파트동까지 걸어오는 길에 잠이 든 것이다. 그때 나는 직장인이었지만 커다란 검은색 책가방에 책과 닌텐도를 넣고 다니며 혼자 혼술을 하거나 카페에 가서 젤다의 전설 혹은 동물의 숲 같은 게임을 뒤적이거나 책을 읽거나 하던 때라서 아마 학생으로 오해받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 다 젊은 남자가 나를 깨워주었는데, 한 번은 내가 깨운다고 짜증을 냈나 보다. ㅋㅋㅋㅋ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럼 여기서 계속 있든가요!'하고 되받아쳐서 그때 정신이 번쩍 들어 깼다. ㅋㅋㅋㅋㅋㅋㅋ번쩍 일어나서 '어우 감사합니다' 그러고 비틀비틀 다시 집까지 걸어갔는데 그게 시간이 11시도 안 됐을 시간이라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아파트 단지에서 한참 자다가 들어왔다는 걸 아직도 모르신다. 

 

 

3. 이 날은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뭐 술이랑 크게 상관없는 에피소드이긴 한데. 인형뽑기를 해서 머리가 동그랗고 베이지색의 강아지 인형을 하나 뽑았다. 손에 들기 귀찮았고 머리가 동글동글에서 쓰다듬기 좋은 모양이라 코트를 벌려 그 안에 구겨 넣고 코트를 잠가서 인형이 딱 몸에 붙어있게 고정을 하고 돌아다녔다.

  그랬는데 친구가 자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고 그러는 거다. 그 시선이 '저거 뭐야...?' 이런 당황스럽고 신기한 시선이긴 했는데 그냥 기분탓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친구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품의 인형을 진짜 강아지로 착각하는 것 같다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래도 인형이 진짜 강아지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니까!!' 라며 ㅋㅋㅋㅋ 설마, 했는데 몇 분 돌아다녀본 결과 사람들이 진짜로 그 인형을 강아지로 착각을 하는지, 뒤돌아보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구는 '봐봐! 맞잖아!' 이러는데ㅋㅋㅋ 나는 웃겨 죽겠는데 친구는 어째서인지 자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걱정스러운지 심각해 보였다 ㅋㅋㅋㅋ 시선을 즐기며 연남동을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끝이다. 싱겁네 

 

 

그날도 나는 혼자 조용히 자리에서 빠져나와 쓰레기 더미 옆에서 멍 때리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어떤 모임을 가든 술자리로 끝이 난다. 취기인지 니코틴 쇼크인지 모를 어지러움을 은근히 즐기고, 시끄럽고 화려한 반대편 술집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마무리하는 금요일 밤. '곧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자리를 옮겨 2차를 가겠지', 그 자리에 앉아있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함을 느끼며 두 번째 개피를 꺼내던 그때, 앳되어 보이는 목소리의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저 불 좀..."

 

나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라이터를 꺼내 대충 엄지손가락을 튕겨 그 여자 입에 물려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마시는데 그 여자가 또 말을 걸었다.

 

  "저...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다시 보니 오늘 모임 중앙에 앉아있던 여자애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처럼 포슬하고 하얀 피부에 포동포동한 볼살 속으로 움푹 들어가는 보조개가 귀여워 한 두번 쳐다보기는 했었지만 딱히 말을 섞지는 않았었다. 그 애는 자신을 '희수'라고 소개했다. 그게 희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희수는 수줍어하며 자신을 스물다섯 살에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공시생이고, 공부만 하기에는 외로워 종종 이런 모임에 나온다고 소개했다. 그러고 나서는 친해지고 싶다며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모임에서 한 마디 섞지도 않은 나와 왜 친해지고 싶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그러세요' 하며 승낙했다. 희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싶었지만 그냥 매사에 발랄한 아이인가 보다 했다. 담배를 다 태운 후 마른세수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서 모임에 조금 더 앉아있었지만, 희수와는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냥 한 말인가, 하며 싱겁게 생각하며 집에 무겁게 들어가자마자 희수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 언니 저 희수예요! ]

  [ 잘 들어가셨어요? ]

  [ 언니 오늘 술 많이 드셨나요? 피곤하실 텐데 얼른 쉬세요! ]

  [ 꿀잠 주무시길...!!! ]

 

 

그 이후로 희수와 2주에 두세번 정도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되었다. 만나서 주로 하는 얘기는 희수의 공시생 라이프를 내가 들어주거나 요즘 읽는 책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본 신기한 사실들 정도였다. 얼큰하게 취한 하루, 희수는 자신의 집으로 2차를 가자고 제안했다. 그날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광어회에 소주를 마신 날이었는데, 노량진 자취방에 선물 받은 와인이 있다며 마시러 가자고 하였다. 그 이후 꽤 자주 나는 늦은 밤 희수의 방에서 취해있었다. 


 

노량진은 영 찝찝하다.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침울하게 만든다. 노량진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여유가 없다. 마음에도 체력에도 여유가 없는 것이 표정에 다 드러난다. 그러나 딱히 생기나 열정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결핍만 보일뿐, 기대와 희망의 공기는 희박하다. 희수도 만날 때마다 투덜거린다. 

 

  '언니. 저 오늘 강의 듣는 거 직영상반인 거 아세요? 진짜 억울해. 그러니까 학원에 가도 강사 얼굴도 못 봐요. 그냥 강의실에서 강사가 강의하는 거 실시간 중계하는 영상을 본다니깐요.' 

 

  '오늘 현강 강사는 점심시간을 꼴랑 45분밖에 안 줘요. 지는 밥 안 먹는대요. 또라이 아니에요? 근데 노량진도 노량진인 게, 여기는 밥이 조금만 늦게 나와도 식당주인들이 사과를 해요. 그 사람들도 아는 거죠. 공시생들이 얼마나 급하게 밥 먹고 들어가서 수업 듣는지.' 

 

  '맨날 국밥만 먹어요. 다른 메뉴 먹고 싶어도 고민하거나 찾아갈 시간도 없는 거 있죠. 그래도 오늘은 직강반에 운좋게 들어갔기는 했는데, 웃긴 건 직강반도 결국 강사를 맨눈으로 보기엔 너무 멀어서 영상 봐야 돼요. 인강은 안 할 거래요. 그냥 인터넷에 자기 영상 돌아다니는 게 싫대요. 학생들 생각은 안 해주고. 완전 변태죠.' 

 

희수의 투덜거림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다. 나는 주말마다 마트에서 사서 볶은 제육볶음이나 포장마차에서 사 온 오뎅 몇 꼬치 같은 안주에 소주를 홀짝이며 희수의 불평을 말없이 들어준다. 종종 작은 리액션을 해주면서. 

 

희수와 연락하며 종종 얼굴을 마주한 지 한달 즈음되었을 때 병을 고백했다. 우울증을 앓은 지 꽤 됐다고. 희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그래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던데. 현대인들 흔한 병인데. 언니 괜찮아요.' 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그 애가 한 말 중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권태로운 기분이 들었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면, 감기약을 먹으면 일주일이면 낫는 감기라면, 내 병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종종 죽을 듯이 아픈 것치고는 평가절하 당하는 것 같아 괜스레 억울했다. 희수가 '괜찮다'는 게, 그 병을 가지고 있는 내가 괜찮다는 건지, 그 병을 가지고 있는 나를 만나는 자신이 괜찮다는 건지 모호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그 말은 내 병이 괜찮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언니는 그런 거 아니니까.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아픈 거 무기로 쓰는 사람들. 연예인들도 알고보니 우울증이다 뭐다 고백하면서 감성팔이하는 애들도 많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힘든 데도 꾹 참고 사는 언니 같은 사람들이 억울한 거잖아. 언니도 그런 애들 보면 억울하다는 생각 들지 않아요? 괜히 오해받게 되고."

 

내가 억울한 게 하나 있다면 병을 앓는다는 사실뿐이었는데, 희수의 말에 나는 희수에게는 이것 이상으로 솔직하게 병을 드러낼 수 없겠구나 싶었다. 내가 병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아프다고 할수록 희수는 나를 병을 무기로 휘두르는 사람 쪽으로 생각할 아이겠지.


 

그날도 나는 희수의 방에서 얼굴이 벌개져 싸구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알지도 못하는 재즈를 들으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때 아주 말랑하고 촉촉한 무언가가 내 볼에 와닿았다. 한참 닿았다가 떨어지는 그 애의 입술. 이게 뭔가, 하며 돌아보자마자 희수가 뱉은 말이 내 귓가에 흘렀다.

 

  "언니, 저 레즈 그런 건 아닌가 봐요."

 

이제 더이상 이 아이를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레즈라서도 아니고, 내가 희수를 좋아했었어도 아니다. 희수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실망감이나 좌절감 때문도 아니고. 희수를 옆에 두고도 그 애를 그리워하며 우울해질 내가 뻔해서도 아니고. 그냥. 그 애가 꼴 보기 싫어져서. 그래서다. 

 

  "희수야. 잘 지내" 

 

나는 곧장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며 말했다. 희수도 내가 더이상 오지 않을 걸 눈치챘는지 이상한 말을 했다. 

 

  "언니. 저 용돈 좀 주시면 안돼요?" 

 

나는 대답 않고 그대로 문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니 가슴이 뛰는 게 아니라 내려앉았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9호선 급행을 탔다. 이리저리 남의 어깨에 부딪히면서도 가슴 통증은 심해져만 갔다. 점점 택시를 탈 걸 후회하며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어떻게든 차려보려 애쓰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집으로 김치를 보냈다는 엄마에게 나는 새삼스럽게 말했다.

 

  "엄마. 나 아파."

 

그러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알아. 니가 언제 안 아픈 적 있었니? 김치 받으면 좀 익혀서 먹어라. 양념이 심심해서 신김치로 먹어야겠더라."

 


 

다이소에서 커튼봉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문이 여닫히는 양쪽면에 커튼봉을 단단히 설치하고는, 어떤 천을 이용해야 나의 기도를 확실하게 막아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후드티 두 벌을 묶어 커튼봉에 달았다. 너무 길면 내 발이 땅에 닿을 수도 있으니, 목을 매달아도 대롱대롱 잘 매달려 있을 수 있도록 높이를 계산하여 후드티 길이를 조절했다. 스마트폰에 '절대 풀리지 않는 매듭 묶는 법'을 검색하여 힘이 가해질수록 매듭이 단단해지도록 하고, 머리를 넣을 수 있도록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옷을 묶었다. 

이제 옷 사이에 머리를 넣어 기도를 잘 조이도록 위치하고 의자를 발로 걷어차면 끝나는 일이다. 의자에 올라서서 은행 스마트폰 앱을 켰다. 

 

 

[ 장시간 거래가 없어서 로그아웃 되었습니다.] 

 

 

화면에 뜬 메시지에 확인을 누르고, 다시 로그인하여 잔액을 확인했다. 아까 담배를 한갑 샀으니 4500원이 적어진 27만 8640원이 남아있었다. 희수에게 용돈을 얼마를 보낼까 생각하며, 잔액을 다 보내면 조금 섬뜩하려나 싶은 생각에 27만 원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희수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되는 대로요.'

 

'그래. 되는 대로 보내지뭐.' 하며 잔액 27만 8640원을 희수에게 용돈으로 보내고 목을 매달 참이었다. 희수의 계좌번호 같은 건 알 리가 없기 때문에 카카오톡 송금하기로 보내야겠다며 카카오톡 어플을 켰다. 희수의 프로필을 눌러 '송금하기' 버튼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다른 사람의 프로필에는 버젓이 있는 원화표시의 송금하기 버튼이 희수에게만 없다. 

  잠시 멍을 때리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희수가 나를 메신저 친구에서 차단을 한 모양이었다. 차단 당한 친구는 상대의 '송금하기' 버튼을 볼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이것을 통해 친구가 나를 차단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꿀팁을 전하는 블로그 글을 보았다. 희수에게 용돈을 보내고 죽으려고 했는데. '어쩌지' 하다가 의자에서 힘없이 내려왔다. 

 

   '에이 그래, 오늘만 날인가. 용돈은 주고 죽어야지.'

 

그러고는 갑자기 출출해져서 라면 물을 올렸다. 하얗게 끓어오르는 물을 보며 아직 반도 채 피지 못한 담뱃갑에서 하나를 물어 나는 대충 엄지손가락을 튕겼다. 그 밤과 같이. 

 

 

 

요 몇 주간 앓았다.

내가 앓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몸이 아파서 끙끙 앓았다는 거다. 

우울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우울증의 증상 중에도 '신체 증상'이라 하여 몸이 아픈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 

심장쪽이 아프다.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기 전에 가슴이 아픈 것이 심장 질환인줄 알았다.

가슴이 자꾸 뛰고 답답하니 심장질환 관련한 검사를 이것저것 받아보았지만 이상이 없었다. 

 

이번에 겪는 증상은 심장이 벌렁벌렁 떨린다. 그러면서 몸도 같이 떨리는 기분이 든다. 

손이 벌벌 후들후들.. 심장이 뛰듯 나도 뛴다. 아프게

 


 

종일 누워있으면

이렇게 왜 살아야할까. 나는 왜 숨쉬고 다음날 눈을 떠야하는 걸까. 

내 존재의 의미에 자꾸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그러니 내가 미워지고, 살기 싫어지고. 

 

죽고 싶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은 가라앉고 싶다. 

흘러가는 강물 같은 게 인생이라는 데, 나는 흘러가지 않고 푹 잠기고 싶다. 

무겁게 무겁게 아래로 침식하고 싶다. 

 

 

그러다가 누군가 나를 건져준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면증이 있어서 잠에 들기 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어디 즈음에 와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이 흐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시작이 반이면, 나머지 반은 어떡하라고? 그래서 시작하기가 싫은 거야. 

시작을 안 하면 나머지 반도 안 해도 되는 걸.

 

누구는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라고 한다.

그러니까,

시작은 반밖에 안 되고, 시작을 하면 끝을 봐야 하니 그 과정은 얼마나 두려운가.

칼을 빼들었으면 무라도 베라고 하던데, 

무도 안 베면 안될까? 

 

또 누구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한다. 

또 누구는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됐지.' 라고 한다. 

 

 

나는 어느 과정에 있는가.

나는 시작은 한 걸까? 시작을 했으면, 반이 남았을까? 그것보다는 덜 남았을까?

서른둘의 나이에 인생의 시작을 했는지 안 했는지 고민하는 사람. 

 

-1-에 이어서...

 

 

그래서 단기 기억 상실이나 기억력 저하 같은 부작용을 겪고도 이 시술이 효과가 있었냐,하면 분명히 있었다. 

ECT 의 효과는 입원 당시에서부터 나타난다. 

 

시술을 받기 전에는 아주 위험한 상태에서 입원을 했었다. 

폐쇄병동에 입원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자살 충동을 강하게 느껴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유서를 쓰거나. 

시술을 한 3-4차례 받은 후부터는 호르몬 체계가 리셋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조울증 환자라 조증까지 기분이 좋아지면 곤란한데, 그런게 아니라 그냥 편안해진다. 

 

8회를 받았을 때도 효과 지속 기간이 짧았다. 

봄에 처음으로 8회를 받고 바로 몇달 후 여름에 10회를 받게 되었으니. 

 

10회를 받은 이유는 지속 기간을 늘려보자는 이유였다. 

일주일에 세 번 시술을 받으니 약 한 달간 입원을 해야하는데 그것 또 여간 지루한 게 아니다. 

(하지만 지루한 기억도 없어지니... 딱히 불만 가질 것도 없다.) 

 

여름~가을 넘어가는 중에 10회를 받고나서 곧장 11월에 또 4회를 받았다. 

역시나 지속기간은 짧다. 

그러니 일년 내내 시술을 받게된 꼴이 되어서 2024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4회는 유지치료 개념으로 적은 횟수를 받았다. 

이렇게 점점 유지기간을 이어가면서 유지 치료를 받으면 몇 달에 한 번 정도, 1박 2일로 간단히 입원하여 시술을 받으면 유지될 수 있을 정도가 된다고 한다. 11월에 그렇게 받은 후 꽤 나빠졌어서 유지 치료 개념으로 다시 시술 받을 것도 고려해 보았으나, 

반성문 이후로는 자살 생각은 들지 않아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이 3월말이니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약물로만 치료하거나 스프라바토 치료보다는 효과를 많이 보았다. 

 

다만, 부작용이 확실히 있고 

일반적으로 한 달씩 입원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중증 환자가 아닌 이상 추천하고 싶은 치료는 아니다. 

 

충분히 약물 치료를 시도해보고 

약물저항성 환자가 의심이 되고, 자살 충동이 절제가 안 되어 목숨이 위험한 지경까지 오면.. 그때는 받아도 좋은 시술 같다. 

의료보험도 적용되고. 

 


 

 

후기 적어보려고 할 떄에는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또 막상 적다보니 별로 할 말도 없다.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억 상실 부작용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상당히 불편하다고 다시 강조하고 싶다.

유튜브 등에 ECT 관련 설명 영상을 보면

기억이 돌아오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고, 뭐 중요한 건 메모해두거나 하면 업무에도 지장이 없을 것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내가 읽었던 책에 의하면,

어린 시절 기억이 대부분 없어지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면 좋겠다.

 

나에게 남은 희망인 치료이기도 하다.

내가 어쨌든 데굴데굴 아플 때, 약도 안 듣고 미치겠을때, ECT라는 처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위안을 준다.  

 

 

사라진 기억은, 

쪽팔린 기억만 사라지고 나머지는 돌아오면 좋겠기는 하네

 

조울증을 앓으면서 22회 ECT 시술을 받은 치료 중간 경과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중간 경과라 함은, 완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겠다.

- 실제로 ECT는 치료 효과 유지 기간이 길지 않아서 유지 치료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모든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시술 외에 먹는 약물이나 나의 뇌의 작용으로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 - 반드시 시술 때문에 겪은 일이라고 볼 수 없다.

환자 개인으로서의 이야기이며, 지배적인 의학적 견해나 지식과는 무관하다.    

 


 

 

ECT (Electro Convulsive Therapy: 전기 경련 치료)는 아주 오래된 정신과 치료 방법이다. 

오래전에는 마땅한 마취 없이 이루어져 거의 고문 수준의 고통이었겠으나, 

현재는 마취과와 협력을 통해 잠든 상태로 진행된다.

 

옛날 영화에서 정신과 시술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흔하게 봤을 법한 광경에서 행해지는 게 바로 ECT 시술이다. 

머리에 무섭게 생긴 기구를 쓰고, 전기를 흘려보내면 환자가 고통스럽게 경련하다가 의식을 잃기도 한다.

전류가 몸에 흘러, 온몸이 부들부들 (수준이 아니라 와라라라락)하는 장면.

 


 

ECT를 받게 된 계기는 스프라바토가 더이상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살사고가 강했던 나는 두 달정도 스프라바토 치료를 받았는데, 딱 그때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자살충동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스프라바토는 가격도 비싸고, 받을 때 불편한 점도 많아서 더 이상 받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한 의사가 ECT치료를 받고 우울증이 호전되었다는 영상을 보시고는

자살충동이 심해졌을 때 ECT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내가 이미 써볼만한 약은 다 먹어보았던 것으로 보아, 

다른 병원에서는 '약물저항성 환자'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니까 나는 약물치료가 영 효과적이지 않은 환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 약물 치료가 잘 듣지 않는 환자. 그러면 물리적인 시술도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단다. 

 

총 3번 입원하여서 각각 8회, 10회, 4회 이렇게 총 22회 시술을 받았다. 

 

ECT의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 바로 '단기 기억 상실'이라서,

사실 지금 기록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 기억이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아 구멍이 많다. 안타깝게도.. 

 

그래도 기억 나는 대로 적어보지 뭐. 

 


 

두 번째 입원으로 10회를 받기로 하고 입원하여 첫 시술을 받았을 때, 두통과 어지럼증, 오심(속 울렁거림) 증상이 너무 심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이거 뭐 이거 못하겠는데? 싶었다. 

분명 그 이전에 8회 받았을 때는 하나도 안 아팠는데! 

 

회진 오신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저번에도 처음 받으실 때 똑같이 아파하셨었는데... 제가 알고 있었는데, 제 잘못이죠 뭐.' 하셨다. 

기억 하나도 안 나는데 나는. 교수님은 알고 계셨다고 한다.

이게 부작용이다. 기억이 안 난다.

 

부작용으로 기억이 안 난다는 게, 가물가물하다 -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없던 일이 된다. 

그러니까 특정 기억이 안 난다는 걸 나는 스스로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없던 기억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기억이 존재했다는 사실 조차 잊기 때문에. 

 

 

누군가가 옆에서 '너 이런 적 있잖아.' 혹은 '네가 이렇게 말했잖아, 내가 이렇게 말했잖아' 이러면 

그제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냥 '엥 내가 그랬다고?' 이렇게 된다.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그게 기분이 썩 찝찝하고 좋지 않다. 

그리고 뭔가 일상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하면 퍽 불리하다. 

 

기억이라는 게 사건만 잊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잊는다.

예를 들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서운한 일이 있었다거나, 미워졌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잊어버림과 함께 그 일로 파생된 감정도 함께 잊는다.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싫댔다가 좋댔다가 그런.

 

단기 기억 상실 부작용은

1. 시술 받기 전 3-4개월 전의 기억이 없어지는데

2. 다시 돌아온다

고 설명을 듣고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냥 2024년 내내 기억이 거의 없다.

시술받을 때의 병원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입원과 입원 사이의 기억도 거의 없고,

게다가 그 전년도 기억까지 깡그리 희미해졌다.

3-4개월 정도라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2년 정도의 기억이 바래졌다.

그 정도야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안 나는 거일 수도 있잖아!라고 하기엔 사진첩에 남아있는 너무나 소중한 기억들이 다 날아갔다. 그나마 당시에 브이로그라도 찍어두어서 엿볼 수 있기에 망정이지. 영 억울할 뻔했다.

 


 

 

몇 개월 간의 기억이 사라진 거나, 2년 정도의 기억이 희미해진 것 정도야

일을 쉬기도 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큰 사건도 없었고... 조금 기분이 찝찝하고 씁쓸한 것으로 끝나겠다만.

 

전공 지식이 조금 날아간 것은 문제가 크다.

대학 4년에 임용고시 공부, 학교에서의 업무 경력까지 따지면 국어를 다룬 게 족히 10년은 될 텐데...

내가 이 블로그에 중학생들 풀라고 낸 문제를 보고서 '이 문제를 내가 왜 냈지?' 하는 지경으로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다.

 

이건 심각하다... 싶어서 전공 서적을 오랜만에 조금 뒤적여 보니

공부한 건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훑어보면 다시 돌아올 듯한데, 당시에는 이대로 국어교사의 자질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순간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다행이야. 니들은 어디 안 가서... 내가 어떻게 가진 내 새끼들인데 어디 가지 마라.  

 


 

잃어버린 기억들이 차츰 돌아온다고도 했는데, 돌아오기는커녕 새로운 기억들도 잘 저장이 안 된다. 

우울증에 걸리면 인지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내가 일상에 집중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기엔 시술받기 전후가 너무나 확연히 달라서 ECT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8회, 10회, 4회 받으면서 사이사이 겪은 일들이야 시술 중간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4회를 받은 후로 지금까지. (4회는 2024년 11월경에 받았다.)

그러니까 2025년 3월까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게 삐그덕거린다. 

 

진료를 보면서 자꾸 하는 말이 

'선생님 제가 띨띨해진 것 같아요'이다. 

 

어제 내가 운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밥을 뭐 먹었는지 영 기억이 안 난다. 

너무 사소한 일이라서 중요하겠냐는 질문을 듣는다면. 

그런 사소한 것들을 잊는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겪어봐야 안다고 답하고 싶다. 기억이 날랑말랑 안 나니까. 답답하고 찝찝하고 참.... 불편하고 이상한데 이게 뭐라 형언하기 힘든 기분이 든다.  

 

 

 

 

-2-에 이어서...

 

 

 

딱 한마디로, 시트콤 시리즈 같은 연작소설집이다. 

정말로. 

 

당장 내일 넷플릭스 시리즈로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에피소드가 있고,

하나의 전체를 통과하는 사건이 있고.

 

근데 뭔가 소설을 통해서 재미 그 이상의 것을 얻고자 한다면 비추천한다. 

그냥 재미로. 영상은 영 피곤해서 책을 읽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강추한다. 

 

유머가 현대적이고, 똑똑하고, 깔끔하다. 읽으면서 히히덕거리기도 했고, 박상영 느낌의 재치스러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박상영처럼 무언가 알맹이 있는 주제를 갖고 있진 않다)

 

언젠가 <대도시의 사랑법>처럼 시리즈가 나올 것만 같은 예감이 아주아주 강하게 든다. 약간 '호텔 델루나'가 이런 느낌이려나? 안봐서 모른다. 

 

 

 


 

 

가상캐스팅 한번 해보겠다. 

 

무당언니 역에는 유인나 배우, 천우희 배우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새초롬한데 카리스마 있고 어떨때는 귀엽고 그런데 약간 성숙한 이미지. 

화용은 순진, 순수한데 할 건 다 하고, 또 엉뚱한 면이 있고. 정도 있고. 엄청 똑똑하진 않은데 묘하게 영리한 이미지. 김고은 배우가 딱일 것 같아. (유미의 세포들 이후로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다. 힝... 개인적인 팬심 가득 담았다.) 

백화는 아주 강하고 표독스럽게 표현되어야 하니까.. 전종서 배우 찰떡이다. 

 

벌써 재밌겠는걸.. 

거 제작사 님들 좀 만들어 주쇼. 

 

 

 

반성문을 쓴 이후로 죽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살아보고자 한다면, 딱히 그건 또 아닌데 말이다. 

 

우울한 날이 있다. 일주일에 한두번정도. 

가슴이 아파서, 불안해서, 그런데 왜 불안한 건지도 몰라서, 이유 없이 치밀어오르는 우울감 때문에

그렇게 누워서 한없이 우울해하는 날이 있다. 

 

아무리 우울해도 죽고 싶은 생각은 안 난다. 묘하지.

 

버릇처럼 하던 말이, '나는 내일 죽어도 안 이상한 사람이야.' 였는데. 

이제 죽음은 나와 많이 멀어졌다. 그러니까, 죽음에 무관심해졌다. 

죽음에 대한 갈망을 딱히 떨쳐냈다거나 극복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어졌다. 

 

죽을 이유를 못 찾겠다.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찾았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그건 또 아닌데 말이다. 

 


 

그냥 흘러간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숨쉬고. 그렇게 가만히 가만히 있다. 그렇게 존재하고 살고 있다. 

 

대학시절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이 유행이었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잠시 들춰보고서는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가?' 고민이 생겼었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알딸딸 취한 상태로 신촌 거리를 거닐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지연아, 자존감 그거. 계속 생각하다보면 더 자신 없어진대. 차라리 그 생각을 하지 말아봐.' 했다. 

 

무관심해지니 이제 알겠다. 

무관심하면 생각도 안 나고, 생각이 안 나면 무관심해진다. 서로서로 그렇게 끌어당기면서 머물러 있던 것. 

 

이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프더라도 살아 있을 거다. 왜냐면. 살고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죽을 생각은 없어서. 딱히. 딱히 없어서... 

 

오늘 나는 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애인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색칠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그럴 거고. 매일이 그렇겠지. 

별다른 거 안 해도 되잖아? 

 

존재만 해도 되잖아.

존재만으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존재하고. 시간은 흐르고. 나는 숨쉬고. 그렇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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