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나는 혼자 조용히 자리에서 빠져나와 쓰레기 더미 옆에서 멍 때리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어떤 모임을 가든 술자리로 끝이 난다. 취기인지 니코틴 쇼크인지 모를 어지러움을 은근히 즐기고, 시끄럽고 화려한 반대편 술집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마무리하는 금요일 밤. '곧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자리를 옮겨 2차를 가겠지', 그 자리에 앉아있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함을 느끼며 두 번째 개피를 꺼내던 그때, 앳되어 보이는 목소리의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저 불 좀..."

 

나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라이터를 꺼내 대충 엄지손가락을 튕겨 그 여자 입에 물려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마시는데 그 여자가 또 말을 걸었다.

 

  "저...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다시 보니 오늘 모임 중앙에 앉아있던 여자애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처럼 포슬하고 하얀 피부에 포동포동한 볼살 속으로 움푹 들어가는 보조개가 귀여워 한 두번 쳐다보기는 했었지만 딱히 말을 섞지는 않았었다. 그 애는 자신을 '희수'라고 소개했다. 그게 희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희수는 수줍어하며 자신을 스물다섯 살에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공시생이고, 공부만 하기에는 외로워 종종 이런 모임에 나온다고 소개했다. 그러고 나서는 친해지고 싶다며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모임에서 한 마디 섞지도 않은 나와 왜 친해지고 싶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그러세요' 하며 승낙했다. 희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싶었지만 그냥 매사에 발랄한 아이인가 보다 했다. 담배를 다 태운 후 마른세수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서 모임에 조금 더 앉아있었지만, 희수와는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냥 한 말인가, 하며 싱겁게 생각하며 집에 무겁게 들어가자마자 희수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 언니 저 희수예요! ]

  [ 잘 들어가셨어요? ]

  [ 언니 오늘 술 많이 드셨나요? 피곤하실 텐데 얼른 쉬세요! ]

  [ 꿀잠 주무시길...!!! ]

 

 

그 이후로 희수와 2주에 두세번 정도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되었다. 만나서 주로 하는 얘기는 희수의 공시생 라이프를 내가 들어주거나 요즘 읽는 책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본 신기한 사실들 정도였다. 얼큰하게 취한 하루, 희수는 자신의 집으로 2차를 가자고 제안했다. 그날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광어회에 소주를 마신 날이었는데, 노량진 자취방에 선물 받은 와인이 있다며 마시러 가자고 하였다. 그 이후 꽤 자주 나는 늦은 밤 희수의 방에서 취해있었다. 


 

노량진은 영 찝찝하다.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침울하게 만든다. 노량진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여유가 없다. 마음에도 체력에도 여유가 없는 것이 표정에 다 드러난다. 그러나 딱히 생기나 열정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결핍만 보일뿐, 기대와 희망의 공기는 희박하다. 희수도 만날 때마다 투덜거린다. 

 

  '언니. 저 오늘 강의 듣는 거 직영상반인 거 아세요? 진짜 억울해. 그러니까 학원에 가도 강사 얼굴도 못 봐요. 그냥 강의실에서 강사가 강의하는 거 실시간 중계하는 영상을 본다니깐요.' 

 

  '오늘 현강 강사는 점심시간을 꼴랑 45분밖에 안 줘요. 지는 밥 안 먹는대요. 또라이 아니에요? 근데 노량진도 노량진인 게, 여기는 밥이 조금만 늦게 나와도 식당주인들이 사과를 해요. 그 사람들도 아는 거죠. 공시생들이 얼마나 급하게 밥 먹고 들어가서 수업 듣는지.' 

 

  '맨날 국밥만 먹어요. 다른 메뉴 먹고 싶어도 고민하거나 찾아갈 시간도 없는 거 있죠. 그래도 오늘은 직강반에 운좋게 들어갔기는 했는데, 웃긴 건 직강반도 결국 강사를 맨눈으로 보기엔 너무 멀어서 영상 봐야 돼요. 인강은 안 할 거래요. 그냥 인터넷에 자기 영상 돌아다니는 게 싫대요. 학생들 생각은 안 해주고. 완전 변태죠.' 

 

희수의 투덜거림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다. 나는 주말마다 마트에서 사서 볶은 제육볶음이나 포장마차에서 사 온 오뎅 몇 꼬치 같은 안주에 소주를 홀짝이며 희수의 불평을 말없이 들어준다. 종종 작은 리액션을 해주면서. 

 

희수와 연락하며 종종 얼굴을 마주한 지 한달 즈음되었을 때 병을 고백했다. 우울증을 앓은 지 꽤 됐다고. 희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그래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던데. 현대인들 흔한 병인데. 언니 괜찮아요.' 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그 애가 한 말 중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권태로운 기분이 들었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면, 감기약을 먹으면 일주일이면 낫는 감기라면, 내 병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종종 죽을 듯이 아픈 것치고는 평가절하 당하는 것 같아 괜스레 억울했다. 희수가 '괜찮다'는 게, 그 병을 가지고 있는 내가 괜찮다는 건지, 그 병을 가지고 있는 나를 만나는 자신이 괜찮다는 건지 모호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그 말은 내 병이 괜찮지 않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언니는 그런 거 아니니까.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아픈 거 무기로 쓰는 사람들. 연예인들도 알고보니 우울증이다 뭐다 고백하면서 감성팔이하는 애들도 많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힘든 데도 꾹 참고 사는 언니 같은 사람들이 억울한 거잖아. 언니도 그런 애들 보면 억울하다는 생각 들지 않아요? 괜히 오해받게 되고."

 

내가 억울한 게 하나 있다면 병을 앓는다는 사실뿐이었는데, 희수의 말에 나는 희수에게는 이것 이상으로 솔직하게 병을 드러낼 수 없겠구나 싶었다. 내가 병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아프다고 할수록 희수는 나를 병을 무기로 휘두르는 사람 쪽으로 생각할 아이겠지.


 

그날도 나는 희수의 방에서 얼굴이 벌개져 싸구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알지도 못하는 재즈를 들으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때 아주 말랑하고 촉촉한 무언가가 내 볼에 와닿았다. 한참 닿았다가 떨어지는 그 애의 입술. 이게 뭔가, 하며 돌아보자마자 희수가 뱉은 말이 내 귓가에 흘렀다.

 

  "언니, 저 레즈 그런 건 아닌가 봐요."

 

이제 더이상 이 아이를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레즈라서도 아니고, 내가 희수를 좋아했었어도 아니다. 희수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실망감이나 좌절감 때문도 아니고. 희수를 옆에 두고도 그 애를 그리워하며 우울해질 내가 뻔해서도 아니고. 그냥. 그 애가 꼴 보기 싫어져서. 그래서다. 

 

  "희수야. 잘 지내" 

 

나는 곧장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며 말했다. 희수도 내가 더이상 오지 않을 걸 눈치챘는지 이상한 말을 했다. 

 

  "언니. 저 용돈 좀 주시면 안돼요?" 

 

나는 대답 않고 그대로 문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니 가슴이 뛰는 게 아니라 내려앉았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9호선 급행을 탔다. 이리저리 남의 어깨에 부딪히면서도 가슴 통증은 심해져만 갔다. 점점 택시를 탈 걸 후회하며 혼미해져 가는 정신을 어떻게든 차려보려 애쓰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집으로 김치를 보냈다는 엄마에게 나는 새삼스럽게 말했다.

 

  "엄마. 나 아파."

 

그러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알아. 니가 언제 안 아픈 적 있었니? 김치 받으면 좀 익혀서 먹어라. 양념이 심심해서 신김치로 먹어야겠더라."

 


 

다이소에서 커튼봉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문이 여닫히는 양쪽면에 커튼봉을 단단히 설치하고는, 어떤 천을 이용해야 나의 기도를 확실하게 막아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후드티 두 벌을 묶어 커튼봉에 달았다. 너무 길면 내 발이 땅에 닿을 수도 있으니, 목을 매달아도 대롱대롱 잘 매달려 있을 수 있도록 높이를 계산하여 후드티 길이를 조절했다. 스마트폰에 '절대 풀리지 않는 매듭 묶는 법'을 검색하여 힘이 가해질수록 매듭이 단단해지도록 하고, 머리를 넣을 수 있도록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옷을 묶었다. 

이제 옷 사이에 머리를 넣어 기도를 잘 조이도록 위치하고 의자를 발로 걷어차면 끝나는 일이다. 의자에 올라서서 은행 스마트폰 앱을 켰다. 

 

 

[ 장시간 거래가 없어서 로그아웃 되었습니다.] 

 

 

화면에 뜬 메시지에 확인을 누르고, 다시 로그인하여 잔액을 확인했다. 아까 담배를 한갑 샀으니 4500원이 적어진 27만 8640원이 남아있었다. 희수에게 용돈을 얼마를 보낼까 생각하며, 잔액을 다 보내면 조금 섬뜩하려나 싶은 생각에 27만 원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희수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되는 대로요.'

 

'그래. 되는 대로 보내지뭐.' 하며 잔액 27만 8640원을 희수에게 용돈으로 보내고 목을 매달 참이었다. 희수의 계좌번호 같은 건 알 리가 없기 때문에 카카오톡 송금하기로 보내야겠다며 카카오톡 어플을 켰다. 희수의 프로필을 눌러 '송금하기' 버튼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다른 사람의 프로필에는 버젓이 있는 원화표시의 송금하기 버튼이 희수에게만 없다. 

  잠시 멍을 때리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희수가 나를 메신저 친구에서 차단을 한 모양이었다. 차단 당한 친구는 상대의 '송금하기' 버튼을 볼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이것을 통해 친구가 나를 차단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꿀팁을 전하는 블로그 글을 보았다. 희수에게 용돈을 보내고 죽으려고 했는데. '어쩌지' 하다가 의자에서 힘없이 내려왔다. 

 

   '에이 그래, 오늘만 날인가. 용돈은 주고 죽어야지.'

 

그러고는 갑자기 출출해져서 라면 물을 올렸다. 하얗게 끓어오르는 물을 보며 아직 반도 채 피지 못한 담뱃갑에서 하나를 물어 나는 대충 엄지손가락을 튕겼다. 그 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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