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2019년 내가 교직사회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갑갑함이 떠올라서. 

최근 <2000년대생이 온다> 라는 책을 읽었다. 
내가 교생 때 가르쳤던 02년생 제자들이 이제 막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 심지어 같은 교사가 된 학생도 있고. 
유튜브  채널 '숏박스' 나 'SNL' 의 MZ오피스 등을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 세대의 90년생과 Z세대/알파세대의 00년생들이 부딪히기 시작하는 상황들이 코미디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이제 90년생은 온 지 한참 되었다는 뜻. 그들도 점점 기득권층에 가까워 지고 있고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하는 위치에 왔다.
시대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세대도 그 속도에 맞추어 무섭게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90년생)도 사회에 들어서고 있는 2000년대생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내가 겪은 교직사회는 양면성이 짙다. 

한 면은 교사들끼리 마치 회사처럼 서로 만나고 도와가며 일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주 흔하게) 

한 면은 개인 교사의 활동을 다른 교사가 관여하거나 어떻게 진행되는지 엿보기조차 매우 힘든 구조이다. 

 

전자는 행정 업무에 해당하고, 후자는 교육 활동에 해당한다. 

 


 

 

2019년, 2월까지만 해도 쌩얼에 츄리닝이나 입고 다니던 고시생이 3월부터는 갑자기 멀끔하게 차려입고 교육전문가 행세를 해야한다. 

 

전에 글에도 쓴 바와 같이, 신규 교사는 보통 담임을 준다. 

담임 기피 현상이 강하고 신규 교사는 업무 착임계(?)를 쓸 시간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우습게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신규교사임은 보통 철저히 감추려고 한다. 

- 나 어려보이지만 얕보지 말라는 기대(?)로 아이들이 짖궂게 '선생님 몇년차예요?' 라고 물어보거나 '선생님 올해 처음이에요?'라고 물어봐도 한사코 비밀이라며 할만큼 해봤다는 뉘앙스를 준다. 

그렇게 어설프지만 전문가행세를 하며 조종례, 청소지도, 상담 등을 진행하고,

수업시간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며 배테랑 교사인냥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한다. 

 

교육자로서 오롯이 맡아 운영하는 수업시간, 학급운영 등에서는 나의 세대적 사고방식과 철학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선배 교사나 관리자(교장감)이 알 길도 잘 없으며,

끽 해봤자 살짝 엿보는 정도인데 그걸로는 수박 겉핥기, 그니까 수박의 맛은 보지도 못하는 정도인 것. 


그러니 내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선배 교사에게 수업에 대한 조언이나 지도를 얻기는 힘든데,

선배 교사들도 어찌나 자기일이 많고 바쁜지... 그런 행동이 민폐로 느껴질수 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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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업무, 학급 운영, 당장 오늘 세네개씩 들어가야하는 수업준비도 버거운데 행정업무는 또 얼마나 낯설은가

행정업무야말로 임용고시에서 공부한 적도 없기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선배교사들에게 배울 수 밖에 없다. 질문 투성이. 물음표 살인마.... 

 

선배 교사들도 각자 맡고 있는 행정업무가 있고, 교육활동도 해야하고.

특성이 너무나 상반되는 일들을 여러가지 떠맡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이런저런 질문을 수시로 하기란 참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해야지 행정이 굴러가기 때문에 어찌저찌 부장교사에게 특히 도움을 많이 구해서 업무를 수행하곤 한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교육활동' 의 특징과 '다른 교사와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행정업무'의 특징이 섞이고,

그리고 학교라는 기관의 운영 목적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교직사회의 요상스러운 문화이다.

 

학교의 주 업무는 교육활동이다. 무엇보다 교육활동이 중요하다. 그러니 교사도 교사지만 학생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학생을 위한 학생상담, 학생복지에 대한 개발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에 반해 교사를 위한 상담, 교사의 복지, 교직사회의 개선에 대한 조치는 찬밥신세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간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협의회'라는 이름의 회식이 종종 있기는 하나 다소 드문 편이며

세대간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며 공생하기 위한 길이 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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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발령을 받고 나서 몇개월 일한 뒤, 나는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왜냐면 내가 90년생인데 나를 도저히 다들 이해를 못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나..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어. 세대가 변하고 있는데 교직사회는 딱딱하게 굳어서 그걸 보지 못하고 있었다. - 변하는 교사보다 교육활동이 당장 급하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소감은. 

이건 내가 읽을 게 아니라 교감선생님이 읽어야 하니, 익명으로 하나 사서 교감선생님 책상위에 올려둘까? 였다.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종종 이렇게 일하는 건 '상식'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이렇게 딱딱한 교직 사회에서 절차로 남겨두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2021년, 나는 같은 교무실을 쓰던 40대 중후반 선생님들에게 뒷담화를 엄청 까였는데. (ㅋㅋㅋ)

이유는 뭐 90년생이 왔기 때문이었다. 

주된 까기의 내용은 '쟤는 맨날 조퇴써. 쟤는 금요일 오후면 자리에 있지를 않아.' 였다. 

 

나는 머리가 비상한 편이기 때문에(ㅋㅋㅋ) 그리고 손도 빠르고, 일도 몰아서 와장창하거나 집에 싸들고 가서 하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에는 별로 할일도 없고, 할일이 있으면 차라리 집에 가서 하는 게 더 좋았다. 

-보통 할 일은 행정업무가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수업활동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하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피해를 받을 건 없었는데 그냥 내가 조퇴한다는 이유로 뒷담을 깐 것. 

 

내가 그냥 땡땡이를 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또라이는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정당한 연가를 사용한 거였다. 

그래 내 연가 말이다. 

 

연가! 그니까 직장인으로 치면 연차. 반차. 게다가 우리는 수업은 다 하고 가야하니까 조퇴라고 해봤자 한두시간 집에 일찍 가는 건데??!!! 

내 할일 다 하고 나서 연차도 못 쓰냐고용.~ 제 권리입니다만?

 

부장교사가 한번은 나에게 '젊은 교사들이 별 다른 이유없이 조퇴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 나온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내가 잘 해석해보면.

'당신이 특별한 사유 없이 연가를 사용하여 조퇴를 쓰고 집에 가는 것에 대해서 나와 내 주변 동료 교사들이 아니꼽게 생각해서 뒷담을 한 적이 있다.' 였는데, 

내 딴에는 이상한 게 - 특별한 사유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연가 아니던가? 특별한 사유- 예를 들면 아프다든가- 하면 병가나 공가 등을 쓸 수 있잖아요. (?????) 

 

차라리 회사처럼 내가 자리를 비우면 명확히 업무에 차질이 생겨서 연차나 연가는 그것들을 고려하여 써야한다면 몰라.

나는 내 '행정업무'에 해당하는 것은 충분히 다 마치고 집에 조금 일찍 간 거였는데도 욕을 먹었다. 

실제로 내가 행정업무를 잘 못해낸다도 지적을 들은 적은 없다- 오히려 아주 잘 해낸다거나 혹은 과하게 한다는 평은 들어봤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세대간의 차이 같다. 

그들에게 이제 2000년생이 올텐데 우짜누.

 


 

 

교사들도 서로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역멘토링' 이라는 활동이 있던데. 

 

회사에서는 꼰대상사들이 젊은 사원들에게 치이지 않고 잘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조치도 하는 듯하고,

그것을 알아보려는 시도 등도 나름 이루어지는 것 같던데.

 

교직사회는 일단 포커스가 '학생'에게 맞추어져 있다보니 선배 교사들이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어보인다. 

 

<90년생이 온다> 나 <2000년생이 온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보다 알아두어야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를 하지 못할 거면 '이런 애도 있구나. 혹은 이런 애들이 이제 학교에 들어와서 교사를 하는구나.'를 알아두어야 귀한 인재를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힘들게 임용고시에 붙어놓고도 교직을 떠나는 젊은 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더이상 교사는 선호직업이 아니다. 

교육은 나라 발전의 가장 바탕이 되는 작업이고, 그만큼 유능한 인재들이 받쳐줘야 길게 보았을 때 우리나라가 잘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잘 이해하고 교육, 특히 유능한 교사들을 유치하고 잡아두는 데에 투자할 때가 왔다.

왜 더이상 교사가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지

행정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말고, 있을 때 잘하자고. 

 

 

 

젊은 여교사로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일까?

26살, 어린 나이로 임용이 되면서 '설마 내가 이런 말을 진짜로 듣겠어?' 싶은 말들을 반전없이 들어왔다. 

 

가장 흔히 듣는 말은 '1등 신붓감이네.'. 

저 과일도 깎을 줄 모르는데요?  

이 말의 의미가 -여자가 공무원이니 출산을 해도 짤릴 걱정이 없어 출산 후 맞벌이가 가능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무리없이 쓸 수 있으며 방학 때에도 육아와 가사노동을 도맡아 할 수 있고, 일찍 퇴근하니까 역시나 그만큼 육아와 집안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이는 그다지 크지 않아 남편의 기를 죽이지 않고, 맞벌이와 육아, 집안일을 해내야 하는 직업. 게다가 교육자니까 헌신적으로 아이교육에 힘쓰겠지? - 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인정한다. 

 

물론 1등 신붓감이라는 말도 학창시절내내 남들 놀 때 공부하고,

고시생 시절에는 샤워하거나 잠들기 전에도 시험 범위를 중얼거리며 공부하여 중등임용시험에 합격한 것을 고작 신붓감으로 폄하하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지만. 

(내가 합격했다고 해서 중등임용시험이 별거 아니라고 겸손 떨고 싶은 마음은 없다. 중등임용시험 되기 정말 어렵다.)

 

이보다 더 최악인 말이 있다. 


 

나는 26살이 되던 해에 임용에 합격했다. 

 

교사는 직업 특성상 수습기간이라는 게 없다. 

1월까지만 해도 추리닝 입고 머리도 대충 빗고 다니던 고시생이, 두 달만에 갑자기 반듯한 교사 행세를 해야한다.

많은 신규 선생님들이 눈물을 머금고 3-4월내내 초과근무를 하며 스스로 업무를 익힌다. 

그리고 교사들이 기피하는 새로운 사업이나 전임자가 없는 어려운 사업 등을 신규에게 떠넘기는 일도 많기 때문에 _ 실제로 알려줄 수 있는 선배교사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신규인 해에는 심지어 초과근무를 못 달게 하는 관리자때문에 수당도 받지 못하고 매일같이 저녁 9시까지 남아 업무를 보던 연수원 동기선생님도 있었다.

 

신규 발령 학교가 발표되고 나서 신학기 워크숍에 가보니 이미 업무분장이 다 짜여진 상태였다. 

내가 발령 첫 해에 담임을 맡은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신규교사들이 발령을 받자마자 담임업무를 맡게 된다. 담임은 모든 교사가 기피하고... 신규교사는 애초에 업무분장이 끝나고 발령을 받기 때문에 비담임을 희망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도 당연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냥 당연히 젊은 사람이 담임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들과 라포 형성도 쉽고, 여러 가지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해보거나 학생과의 상호작용 경험을 기르기에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26살이었다. 

대한민국 여성은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24살. 초수에 합격에도 24살. 재수를 하면 25살. 

나는 대학생때 1년 휴학을 하고, 임용은 재수를 해서 26살에 합격했다. 

 

내가 애가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애초에 전제 자체가 틀렸다. 

교사는 아이를 낳는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영역은 양육의 영역이지 교육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육자다. 

나는 교육전문가인데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나에게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뭘까? 

 

아이를 낳는다고 교육 전문성이 훌쩍 올라갈까? 

아이를 낳은 교사가 그렇지 않은 교사보다 담임 업무나 학부모 상담을 더 잘할까?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들어야할 만큼- 교사로서 아이를 낳아봄으로써 깨닫고 알아야할 게 많은 걸까?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면. 

출산 경험이 없는 교사를 교육의 최전선에 앞세우지말고 국가 차원에서 아이를 낳아본 교사만 담임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40대 이상의 미혼 교사나 아이가 없는 기혼 교사들도 꼭 배제해야한다.

(물론 절대로 진심이 아니다. 나도 담임 잘 할 수 있다. 오히려 육아시간이 필요한 선생님들께 담임 업무를 드리는 건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담임교사는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초중과정은 의무교육이다.

공교육은 나라가 제도적으로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담임교사는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한 국민에게 보다 바람직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리일 뿐이지, 학교에 있는 동안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육체제가 싫으면 홈스쿨링을 하면 된다)

 

교사가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교사에게 부모가 되는 경험은 직업상의 유의미한 변화를 주지 않는다. 

교사를 직업적 전문성 측면에서 평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를 낳은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 사이에 '교육자'로서 달라지는 점은 없다. 

교사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도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교육적 측면에서 헤아리고, 교육적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참으로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반전은. 내가 저 말을 교감선생님께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신규 한 해동안 무려 네 번이나. (이유는 가지각색인데 매년 툭하면 말해서 기억도 안남.)

다행히도 학부모님께 들은 적은 없다.

 

난 이제 서른 한 살인데 아직도 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른다. 

매년 20~40대 교사라면 피할 수 없는 이벤트가 있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요상한 입시제도와 대학진학에 대한 뒤틀린 가치관이 만나 수능날은 일년 중 온국민이 제일 조심스러운 하루가 되었다.

수능 듣기 평가 시간 35분간 국내 전 지역에서 (비상 긴급 상황을 제외하고)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행적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말 그대로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인데, 

어째서인지 중등교육 종사자들이 감독관으로 위촉되어 (라고 쓰고 착출이라고 읽는다) 수능감독을 해야한다. 

 

수능감독은 누가 들어가든 부담스러운 자리일 것이다.

그러나 수능감독관은 '위촉'되는 것치고는 당사자의 승낙 과정이 없다. 

보통은 '나이순'으로 단위학교 혹은 교육지원청에서 대상 명단을 작성한다.

_ 한 명의 감독관이 4-5개의 과목을 감독해야하는데, 왜 감독관을 늘려 감독관 1인의 부담을 줄이지 않는지 의문이다.

 

수능감독관은 승낙과정은커녕 위촉을 거절하려면 서류가 필요한데, 요구하는 서류가 꽤나 까다롭다. 

건강 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종합병원의 진단서'를 제출해야만 수능감독 위촉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다. 

 

개인병원의 진단서는 안된다. 꼭 종합병원이어야 한다. 

 

공무원이 병휴직을 하는 데에도 종합병원의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는데, 수능감독에서 제외되려면 이 서류가 필요하다. 

정말... 이상한 기준이다. 


 

나의 첫 공황발작은 2021년 11월. 수능 일주일전이었다. 

물론 나는 학교에서 거의 막내로 이미 수능감독관 명단에 올라있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식은땀이 나며, 세상에 심장과 나만 있는 것 같은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수능감독...나 이거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시험 시간에 공황이 오거나 불안증세가 심해져서 숨이라도 몰아쉬고 소음이라도 내면 소송감이다. 

당시 나는 지하철을 타면 '빨리 집에 들어가야겠다. 사람이 너무 많다. 여기서 벗어나서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수준으로 불안 증세가 심했다. 

 

하지만 당장 나에겐 종합병원 진단서도 없었을 뿐더러,

교육청에 명단을 제출 하기 전에 진단서를 냈어야하기 때문에, 진단서가 있어봤자 이미 소용 없어진 후였다. 

- 게다가 정신과는 진단서를 잘 써주지 않는다. 최소 3개월 이상 통원 치료를 받아야 진단서를 받을 수 있는데, 그 마저도 안 써주는 선생님들도 많다. 아마 환자의 말을 토대로 임상적인 진단을 내리기 때문일 것이다. _ 진단서는 법적 효력이 있기 때문에 악용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학교 측에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수능감독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일단 예비소집 (수능시험장 학교)에 가서 예비감독관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예비소집(수능시험장 학교)에 가서 난..... 혼이 났다. 

이제와서 못하겠다고 하면 어쩌냐고, 그 학교 교감선생님께 짜증이 잔뜩 섞인 타박을 들었다.

우리 학교에서 책임지고 대체 감독관을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별 수 없으니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심란해 있는 나에게 교장선생님은 말하셨다. 

" 선생님, 토익 감독은 잘 하지 않았어? "

 

기가 막혔다. 학교에선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나보고 직접 다음 순번(역시나 나이순)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라고 하였다. 

 

절박한 마음으로 40대 옆부장 선생님 J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대신 가주실 수 없냐고 울먹거리며 이야기했다.  

선생님 J 는 안타까워하거나 걱정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이미 수능날 자녀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해서, 숙소 등을 다 예약해 놓았고 취소할 수 없어서 안된다고 거절하셨다. 

나는 교직 3년차에 교실에서 공황발작이 왔는데, 옆 부서 선생님은 여행을 가셔야했다. 

좌절하는 나에게 선생님 J는 말했다. 

" 선생님, 토익 감독은 잘 하지 않았어? "

 

내가 꾀병이었다고 생각하신 걸까?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셨으면. 아프다는 사람에게 저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땐 안 아팠고, 지금은 아프다고요. 

 

결국은 다른 기간제 선생님께서 나 대신 감독을 가시게 되었다. 

그 선생님도 여행을 계획해 두셨었다. 기간제 교사였기 때문에 거절하기 힘드셨을 거라 생각한다.


 

 

첫 공황발작에 충격 받았던 나는 수능일 다음 주에 일주일간 병가를 냈다. 

 

병가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보니,

나의 부탁을 거절했던 부장 선생님은 급식실에서 -나의 부탁이 황당했다는 듯- 떠벌려 이야기했고, 

내가 비운 담임 자리를 대신하게 된 부담임 선생님에게 경쾌한 목소리로 -담임을 해보니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했다. (그 부담임 선생님은 담임 경력이 없는 신규 선생님이었다.)

아픈 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경솔한 행동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님 J는 내가 교무실을 비우기만 하면, 어디선가 귀신같이 나타나서 나의 뒷담을 하곤 했다고 한다. 

임용이 되고 나서 그동안 경험한 학교는 ... 참 치사하고 유치한 집단이었다. 

(나를 비롯한 젊은 교사들을 뒤에서 신나게 까대던 선생님 J와 그들의 동료이야기는 차차 기록하도록 하겠다)

 

선생님 J가 우습게 알던 내 증상은, 2년 넘게 사라지지 않고 내 생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병으로 남아있다. 

 


 

선생님 J를 생각하면 아직도 나는 종종 눈물이 난다. 

그 사람은 한번이라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본 적이 있을까? 사무치게 억울하다. 

 

교육청에서 중등교사에게 수능감독을 하도록 하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이다. 

나에게 상처를 준 건 수능감독 업무 자체가 아니라, 

수능감독과 관련하여 학교와 선생님 J가 나에게 보인 태도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J를 미워하기로,

아니 ... 그 사람 자체가 미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옹졸함을 안타까워하기로 했다. 

나는 그래도 마땅하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2023년 수능. 나는 F코드의 '종합병원 진단서'를 제출했다. 

혹자는 겉으로 꽤나 멀쩡해 보이는 -새파랗게 젊은- 내가 수능감독에서 빠진 것에 대해 수근거릴 것이 분명하다. 

근데 어쩌라고. 

난 건강해서 무슨 일이든 문제없이 해내는 사람이고 싶은데. 바꿀래? 

작년 12월말 방학을 앞두고 있던 나는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날은 너무 아픈 날이었다. 치밀어 오르는 우울이 나를 덮치고, 자살사고가 시작되었다.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다. 많다고 해서 쉽게 넘길 만한 증상은 아니다. 

한번의 기도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기도를 하면, 그날 그 사람이 숨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일주일간 병가를 내겠다고 했다. 

이때 내가 정 보강 할 사람이 없으면 나가서 최대한 수업을 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게 오해를 일으킨 것 같다. 

학교에선 보강을 넣어주는 걸 부담스러워 했고, 쉬어보고 괜찮으면 나와서 수업을 하라고 했다.

-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쉬어보고 나오라는 게 아니라, 쉬고 늦게라도 꼭 나와서 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병가는 이미 결재가 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학교에 알리지 않고 나가지 않은 이상한 사람이 됐다.)

 

물론 억지로 나가려면 나갈 수 있다. 정신병이라는 게 앓아눕는 병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아주 아프다. 내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상당히 억울하고 불편했다. 

 


 

 

2021년 11월 수능 며칠전, 나에게 공황발작이 일어났다. 

당시 코로나 사태로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교실에 혼자 앉아 있던 나는 갑자기 온몸에 식은 땀이 나며 손이 벌벌 떨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증상을 겪었다. 

급하게 교무실에 있던 청심환 같은 생약을 찾아 입에 털어넣었다. 약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 선생님이 교무실에 들어오셨다. 나는 갑자기 그 순간 그자리에서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고, 딱히 그 선생님을 싫어하지도 않는데 도망가고 싶다니! 

그래서 난 병원을 갔다. 아무래도 내가 아픈 것 같았다. 

 

(내가 아팠던 이유는... 이 글에서 모두 쓰기에는 너무 많아 차차 기록하고자 한다. 

글을 쓰는 목적은 첫째는 해소이고, 둘째는 기록이다. 한 가지 더 바라자면 나와 비슷한 아픔이나 어려움을 겪는 젊은 교사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결국은 한 학기정도는 버텨냈지만 2022학년도 2학기에 휴직을 하게 되었다. 

1년간 휴직을 한 후, 복직하여 보낸 3개월은 꽤나 버거웠다. 

학교는 아직 나에게 무거운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이었고, 나는 겨우겨우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치우며 시간을 보냈다. 진료 예약일까지 채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에 가길 일쑤였다. 

 

하지만 내가 아픈 걸 사람들은 잘 몰랐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단순하다. 

내가 병색을 가리기위해 화장을 하면 좋아보인다고 하고, 화장을 안하고 가면 아파보인다고 한다.

(정말 너무 아파보여서 화장을 할 때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살쪘다고 좋아보인다고 한다. (항우울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체중 증가이다.) 

 


 

 

아직 나는 매일 15알정도의 약을 삼키고, 약 없이는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는 중증기분장애 환자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동시에 겪고 있고, 종종 경도의 조증 증상도 나타난다. 2년이 넘게 치료받고 있는데 영 기복이 심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글을 통해 앞으로 차근차근 

젊은 여성이, 젊은 교사가, 젊은 여교사가 왜 우울증에 걸리는지. 

교직 사회는 젊은 여교사에게 어떤 공간인지 

내가 느낀 바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2024년 1월 21일. 우울증에 걸린 20대 여교사의 이야기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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