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꿈에 대한 글을 썼다. 

꿈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였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건 살면서 처음인 것 같은데.

 

어릴 때부터 교사라는 꿈을 꿨지만, 

- 내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아주 이상적이다. 좋은 사람들을 길러내서 세상이 나아지는 데에 기여하고 싶어서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그 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만 영향이 미치지 않는 영역도 많을 것이다. 교육자는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발전을 도모하는 사람들,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 매일을 보다 아름답게 꾸며주는 사람들 모두가 성장하는 데에 크고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흙이나 거름 같은 거라고.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던 것인가? 생각해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사실 고3때 잠깐 한눈 판적이 있었다. 

내가 고2에서 고3 지낼 때 즈음에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 이제 막 1세대 유튜버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센세이셔널한 히트를 쳤는데,

'이거다!' 싶었다. 

영상을 하고 싶었다. 편집이든 연출이든 뭐든. 영상의 시대가 오는구나 싶었다. (근데 나 좀 선견지명 있는 거 아닌가 데헷)

그래서 수시 6장의 티켓을 전부 미디어 관련 학과로 지원했다. 

 

그런데!! 수능 성적이 너무 잘 나와버린 것.

찍은 거를 다 맞아서 (ㅋㅋㅋ) 담임 선생님께서 입시 상담해주실 때 재수해도 절대 이 성적 안 나오니 무조건 안정지원해서 이번에 가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음...

당시에는 뭐 정시 성적이 좋으면 수시에서 납치당한다 어쩐다, 이런 얘기가 있었어서.... 

평소에 모의고사 보면 어영부영 맨날 재수하겠다고 징징대던 애가 꽤나 선방을 하니,

부모님께서 갑자기 내 대학 진학과 전공을 정하는 데에 크게 관여를 하기 시작했다. 쩝,,, 

그러면서 영상은 여자가 하기에 너무 고생스럽고 잘못하면 배 곯기 딱좋다며, 여자 직업으로는 교사가 최고라며, 사범대 지원을 종용하셨고, 그래서 어찌저찌 수시 지원했던 학교들의 논술 시험은 치루러 가보지도 못하고 사범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사범대는 자격증이 나오는 학과이기 때문에 필수로 들어야하는 전공 필수 과목, 전공 기초 과목 등 필수 이수 학점이 어마어마하고, 

여기에서 한눈 팔기란 참 쉽지 않다. 

복수전공을 한 아주 소수의 동기들은 추가학기는 기본으로 다니는 듯 했고, 대부분의 동기들은 8학기 칼졸업 후에 임용고시를 준비하였다. 

- 임용고시는 졸업예정자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을 준비하는 다른 과 학생들처럼 졸업 유예는 보통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쉬고 싶어서 1년 휴학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8학기 칼졸업 후에 임용고시를 공부하여 교사가 되었다.

 

사범대의 환경이나 주변에서 '공무원이 최고지.' 라는 말이나, '여자 직업으로는 선생님만한 게 없다.'라는 말이나, 부모님의 기대 등으로

나는 그저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길이 있어서.

그리고 그 길이 너무 넓고 명확해서 머리 아픈 고민도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발길을 옮겼던 것 같다. 

 


 

 

곧 복직을 하는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만약 또 아프게 된다면 아마 면직하게 되겠지.

 

사실 끝까지 잘 해낼 거라는 확신보다, 

관두기 영 아까운 이 직업을 내려놓기 위한 정리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동안에는 이 일은 그만한다면 '나는 어떤 일을 업으로 삼고 살까' 참 고민이 많았다.

돈벌이도 그렇지만, 사람에게 '일'이란 먹고 사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건 누구의 삶을 들여다 보아도 그렇지 않을까. 

살아가는 데에 성취와 동기, 철학, 자아와 성격의 형성에도 스며드는 것이 업이다. 

 

교사를 그만둔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어? 라는 질문에 

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냥 알바' 라고 답했었다. 머리 안 쓰고 시키는 거 몸 써서 열심히 하면 먹고 살수 있는 정도의 돈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그러다 문득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책방이다. 


 

 

책방을 운영해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니 신기하리만치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한쪽에는 책을 팔고, 한쪽에서는 커피와 술을 마시며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책을 파는 공간의 이름은 [구멍책방]이라고 할 것이다. '구멍가게' 의 소박한 느낌을 데려오고 싶어서. 

 

[구멍책방]에는 내가 큐레이팅한 책을 팔 것이다. 

나는 책을 고르고 읽는 취향이 꽤나 확고하고,

동묘에 쌓여있는 헌 옷을 뒤져 특별한 아이템을 얻겠다는 패피의 마음으로 (ㅋㅋㅋ) 베스트셀러가 아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책을 알라딘 등을 싹싹 훑어 찾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모아보면 카테고리를 나누기에 나쁘지 않고, 

그동안 주변인들에게 책 추천을 해왔던 바로는 내 취향이 꽤나 대중적이라서 내가 골라오는 책들이 장사를 하기에도 너무 마이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나는 여가독서를 즐긴다. 

자기계발서 같은 건 읽지 않는 편이다. 독자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살아야 한다.' 하는 책들은 사양한다.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요즘 같은 도파민 중독시대에...!!  

'여기서 산 책들은 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는 것 같아.' 라든지, '이 책방 사장님 취향이 좀 웃겨' 같은 소리를 들을 만한 그런 책들을 모아다가 팔고 싶다. 

독서는 항상 지루하고, 마음을 먹어야하지만 건드릴 수 있는 - 여가보다는 생산에 가까운 활동이라는 오명을 벗길 바란다. 

 


 

 

[구멍책방] 옆에는 커피 혹은 차, 술을 마시면서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한다. 

책방에서 구매한 책을 읽어도 되고, 자신의 책을 가져와서 읽어도 되고. 

맨몸으로 온 사람도 자연스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쪽 구석 책장에 자유롭게 가져다가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꽂아둘 것이다. 

 

음료의 종류는 아주 적게. 주인공은 음료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주전부리는 필수다. 

책은 정적인 활동이니까, '가사가 없는' 음악과 손이나 입이 심심한 사람들을 위한 간식거리들을 준비해 두어야 겠지.

 

책 냄새와 적당한 조도의 조명. 편안하지만 졸리지 않는 분위기.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지만, 붕 떠있지도 않아서 각자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어수선하지 않은 공기. 

산만하게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지루하게 단조롭지도 않게 공간을 꾸미고 싶다.

 

이 공간의 이름은 [광장 (아고라)] 라고 할 것이다. 

책을 사는 곳은 작은 구멍가게일지라도, 책을 펼지는 순간 '광장'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아고라'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아고라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폴리스에 형성된 광장으로, 그리스인들은 이 곳에서 민회와 재판, 상업, 사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아고라(Agora)’라는 말은 ‘시장에 나오다', ‘사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아고라조(Agorazo)’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장’의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아고라가 시장의 기능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민들의 일상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아고라 [agor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대학시절 시 창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아고라'를 광화문 광장과 엮어서 시를 쓴 적이 있다.

모든 말들이 모이는 곳. 

광장에는 온갖 말들이 모인다. 그게 옳든 그르든. 같은 생각이든 다른 생각이든. 한 명의 말이든 여럿의 말이든 말이다. 

 

아주 흔하게 책을 펼치면 다양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광장 (아고라)] 는 개인이 책을 읽어서 광장에 나서는 의미도 될 것이고, 또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뜻도 있다. 

 

종종 그곳에서 약간의 취기를 곁들인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싶다. 

책 속의 세상과, 책의 내용이 스며든 나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책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책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타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광장 같은 모임을. 

 

그리고 책장에 있는 책에는 자유롭게 메모를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내가 책을 사서 읽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매모'하기 위함인데. 

책을 읽는 버릇 중에 하나가 '댓글 남기기'이다.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옆에 적어두거나, 웃기면 그냥 'ㅋㅋㅋㅋ'이렇게 적어두기도 한다. 

 

내가 낙서/메모하며 읽은 책을 누군가가 또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달고, 또 그것을 다른 이가 보고 나도 보고. 그렇게 방명록처럼 댓글이 쌓인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광장(아고라)]의 책장에 꽂힌 책들이. 그런 생각들을 모아주면 좋겠다. 재밌는 부분은 sns에 올려도 좋고! 

 

 


 

[구멍책방]과 [광장(아고라)]를 가진 이 책방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으면 좋을까?

가게 이름 짓기는 아주 천천히 생각하며,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나의 설렘으로 남겨두겠다. 이 책방을 여는 그날까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