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을 앓으면서 22회 ECT 시술을 받은 치료 중간 경과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중간 경과라 함은, 완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겠다.

- 실제로 ECT는 치료 효과 유지 기간이 길지 않아서 유지 치료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모든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시술 외에 먹는 약물이나 나의 뇌의 작용으로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다. - 반드시 시술 때문에 겪은 일이라고 볼 수 없다.

환자 개인으로서의 이야기이며, 지배적인 의학적 견해나 지식과는 무관하다.    

 


 

 

ECT (Electro Convulsive Therapy: 전기 경련 치료)는 아주 오래된 정신과 치료 방법이다. 

오래전에는 마땅한 마취 없이 이루어져 거의 고문 수준의 고통이었겠으나, 

현재는 마취과와 협력을 통해 잠든 상태로 진행된다.

 

옛날 영화에서 정신과 시술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흔하게 봤을 법한 광경에서 행해지는 게 바로 ECT 시술이다. 

머리에 무섭게 생긴 기구를 쓰고, 전기를 흘려보내면 환자가 고통스럽게 경련하다가 의식을 잃기도 한다.

전류가 몸에 흘러, 온몸이 부들부들 (수준이 아니라 와라라라락)하는 장면.

 


 

ECT를 받게 된 계기는 스프라바토가 더이상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살사고가 강했던 나는 두 달정도 스프라바토 치료를 받았는데, 딱 그때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자살충동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스프라바토는 가격도 비싸고, 받을 때 불편한 점도 많아서 더 이상 받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한 의사가 ECT치료를 받고 우울증이 호전되었다는 영상을 보시고는

자살충동이 심해졌을 때 ECT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내가 이미 써볼만한 약은 다 먹어보았던 것으로 보아, 

다른 병원에서는 '약물저항성 환자'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니까 나는 약물치료가 영 효과적이지 않은 환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 약물 치료가 잘 듣지 않는 환자. 그러면 물리적인 시술도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단다. 

 

총 3번 입원하여서 각각 8회, 10회, 4회 이렇게 총 22회 시술을 받았다. 

 

ECT의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 바로 '단기 기억 상실'이라서,

사실 지금 기록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 기억이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아 구멍이 많다. 안타깝게도.. 

 

그래도 기억 나는 대로 적어보지 뭐. 

 


 

두 번째 입원으로 10회를 받기로 하고 입원하여 첫 시술을 받았을 때, 두통과 어지럼증, 오심(속 울렁거림) 증상이 너무 심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서.. 이거 뭐 이거 못하겠는데? 싶었다. 

분명 그 이전에 8회 받았을 때는 하나도 안 아팠는데! 

 

회진 오신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저번에도 처음 받으실 때 똑같이 아파하셨었는데... 제가 알고 있었는데, 제 잘못이죠 뭐.' 하셨다. 

기억 하나도 안 나는데 나는. 교수님은 알고 계셨다고 한다.

이게 부작용이다. 기억이 안 난다.

 

부작용으로 기억이 안 난다는 게, 가물가물하다 -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없던 일이 된다. 

그러니까 특정 기억이 안 난다는 걸 나는 스스로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없던 기억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기억이 존재했다는 사실 조차 잊기 때문에. 

 

 

누군가가 옆에서 '너 이런 적 있잖아.' 혹은 '네가 이렇게 말했잖아, 내가 이렇게 말했잖아' 이러면 

그제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냥 '엥 내가 그랬다고?' 이렇게 된다.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그게 기분이 썩 찝찝하고 좋지 않다. 

그리고 뭔가 일상에서 문제가 생겼거나 하면 퍽 불리하다. 

 

기억이라는 게 사건만 잊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잊는다.

예를 들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서운한 일이 있었다거나, 미워졌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잊어버림과 함께 그 일로 파생된 감정도 함께 잊는다.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싫댔다가 좋댔다가 그런.

 

단기 기억 상실 부작용은

1. 시술 받기 전 3-4개월 전의 기억이 없어지는데

2. 다시 돌아온다

고 설명을 듣고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냥 2024년 내내 기억이 거의 없다.

시술받을 때의 병원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입원과 입원 사이의 기억도 거의 없고,

게다가 그 전년도 기억까지 깡그리 희미해졌다.

3-4개월 정도라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2년 정도의 기억이 바래졌다.

그 정도야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안 나는 거일 수도 있잖아!라고 하기엔 사진첩에 남아있는 너무나 소중한 기억들이 다 날아갔다. 그나마 당시에 브이로그라도 찍어두어서 엿볼 수 있기에 망정이지. 영 억울할 뻔했다.

 


 

 

몇 개월 간의 기억이 사라진 거나, 2년 정도의 기억이 희미해진 것 정도야

일을 쉬기도 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큰 사건도 없었고... 조금 기분이 찝찝하고 씁쓸한 것으로 끝나겠다만.

 

전공 지식이 조금 날아간 것은 문제가 크다.

대학 4년에 임용고시 공부, 학교에서의 업무 경력까지 따지면 국어를 다룬 게 족히 10년은 될 텐데...

내가 이 블로그에 중학생들 풀라고 낸 문제를 보고서 '이 문제를 내가 왜 냈지?' 하는 지경으로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다.

 

이건 심각하다... 싶어서 전공 서적을 오랜만에 조금 뒤적여 보니

공부한 건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훑어보면 다시 돌아올 듯한데, 당시에는 이대로 국어교사의 자질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순간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다행이야. 니들은 어디 안 가서... 내가 어떻게 가진 내 새끼들인데 어디 가지 마라.  

 


 

잃어버린 기억들이 차츰 돌아온다고도 했는데, 돌아오기는커녕 새로운 기억들도 잘 저장이 안 된다. 

우울증에 걸리면 인지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내가 일상에 집중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기엔 시술받기 전후가 너무나 확연히 달라서 ECT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8회, 10회, 4회 받으면서 사이사이 겪은 일들이야 시술 중간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4회를 받은 후로 지금까지. (4회는 2024년 11월경에 받았다.)

그러니까 2025년 3월까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게 삐그덕거린다. 

 

진료를 보면서 자꾸 하는 말이 

'선생님 제가 띨띨해진 것 같아요'이다. 

 

어제 내가 운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밥을 뭐 먹었는지 영 기억이 안 난다. 

너무 사소한 일이라서 중요하겠냐는 질문을 듣는다면. 

그런 사소한 것들을 잊는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겪어봐야 안다고 답하고 싶다. 기억이 날랑말랑 안 나니까. 답답하고 찝찝하고 참.... 불편하고 이상한데 이게 뭐라 형언하기 힘든 기분이 든다.  

 

 

 

 

-2-에 이어서...

 

반성문을 쓴 이후로 죽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살아보고자 한다면, 딱히 그건 또 아닌데 말이다. 

 

우울한 날이 있다. 일주일에 한두번정도. 

가슴이 아파서, 불안해서, 그런데 왜 불안한 건지도 몰라서, 이유 없이 치밀어오르는 우울감 때문에

그렇게 누워서 한없이 우울해하는 날이 있다. 

 

아무리 우울해도 죽고 싶은 생각은 안 난다. 묘하지.

 

버릇처럼 하던 말이, '나는 내일 죽어도 안 이상한 사람이야.' 였는데. 

이제 죽음은 나와 많이 멀어졌다. 그러니까, 죽음에 무관심해졌다. 

죽음에 대한 갈망을 딱히 떨쳐냈다거나 극복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어졌다. 

 

죽을 이유를 못 찾겠다.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찾았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그건 또 아닌데 말이다. 

 


 

그냥 흘러간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숨쉬고. 그렇게 가만히 가만히 있다. 그렇게 존재하고 살고 있다. 

 

대학시절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이 유행이었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잠시 들춰보고서는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가?' 고민이 생겼었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알딸딸 취한 상태로 신촌 거리를 거닐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지연아, 자존감 그거. 계속 생각하다보면 더 자신 없어진대. 차라리 그 생각을 하지 말아봐.' 했다. 

 

무관심해지니 이제 알겠다. 

무관심하면 생각도 안 나고, 생각이 안 나면 무관심해진다. 서로서로 그렇게 끌어당기면서 머물러 있던 것. 

 

이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프더라도 살아 있을 거다. 왜냐면. 살고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죽을 생각은 없어서. 딱히. 딱히 없어서... 

 

오늘 나는 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애인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색칠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그럴 거고. 매일이 그렇겠지. 

별다른 거 안 해도 되잖아? 

 

존재만 해도 되잖아.

존재만으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존재하고. 시간은 흐르고. 나는 숨쉬고. 그렇게 지내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2019년 내가 교직사회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갑갑함이 떠올라서. 

최근 <2000년대생이 온다> 라는 책을 읽었다. 
내가 교생 때 가르쳤던 02년생 제자들이 이제 막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 심지어 같은 교사가 된 학생도 있고. 
유튜브  채널 '숏박스' 나 'SNL' 의 MZ오피스 등을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 세대의 90년생과 Z세대/알파세대의 00년생들이 부딪히기 시작하는 상황들이 코미디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이제 90년생은 온 지 한참 되었다는 뜻. 그들도 점점 기득권층에 가까워 지고 있고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하는 위치에 왔다.
시대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세대도 그 속도에 맞추어 무섭게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90년생)도 사회에 들어서고 있는 2000년대생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내가 겪은 교직사회는 양면성이 짙다. 

한 면은 교사들끼리 마치 회사처럼 서로 만나고 도와가며 일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주 흔하게) 

한 면은 개인 교사의 활동을 다른 교사가 관여하거나 어떻게 진행되는지 엿보기조차 매우 힘든 구조이다. 

 

전자는 행정 업무에 해당하고, 후자는 교육 활동에 해당한다. 

 


 

 

2019년, 2월까지만 해도 쌩얼에 츄리닝이나 입고 다니던 고시생이 3월부터는 갑자기 멀끔하게 차려입고 교육전문가 행세를 해야한다. 

 

전에 글에도 쓴 바와 같이, 신규 교사는 보통 담임을 준다. 

담임 기피 현상이 강하고 신규 교사는 업무 착임계(?)를 쓸 시간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우습게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신규교사임은 보통 철저히 감추려고 한다. 

- 나 어려보이지만 얕보지 말라는 기대(?)로 아이들이 짖궂게 '선생님 몇년차예요?' 라고 물어보거나 '선생님 올해 처음이에요?'라고 물어봐도 한사코 비밀이라며 할만큼 해봤다는 뉘앙스를 준다. 

그렇게 어설프지만 전문가행세를 하며 조종례, 청소지도, 상담 등을 진행하고,

수업시간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며 배테랑 교사인냥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한다. 

 

교육자로서 오롯이 맡아 운영하는 수업시간, 학급운영 등에서는 나의 세대적 사고방식과 철학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선배 교사나 관리자(교장감)이 알 길도 잘 없으며,

끽 해봤자 살짝 엿보는 정도인데 그걸로는 수박 겉핥기, 그니까 수박의 맛은 보지도 못하는 정도인 것. 


그러니 내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선배 교사에게 수업에 대한 조언이나 지도를 얻기는 힘든데,

선배 교사들도 어찌나 자기일이 많고 바쁜지... 그런 행동이 민폐로 느껴질수 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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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업무, 학급 운영, 당장 오늘 세네개씩 들어가야하는 수업준비도 버거운데 행정업무는 또 얼마나 낯설은가

행정업무야말로 임용고시에서 공부한 적도 없기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선배교사들에게 배울 수 밖에 없다. 질문 투성이. 물음표 살인마.... 

 

선배 교사들도 각자 맡고 있는 행정업무가 있고, 교육활동도 해야하고.

특성이 너무나 상반되는 일들을 여러가지 떠맡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이런저런 질문을 수시로 하기란 참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해야지 행정이 굴러가기 때문에 어찌저찌 부장교사에게 특히 도움을 많이 구해서 업무를 수행하곤 한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교육활동' 의 특징과 '다른 교사와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행정업무'의 특징이 섞이고,

그리고 학교라는 기관의 운영 목적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교직사회의 요상스러운 문화이다.

 

학교의 주 업무는 교육활동이다. 무엇보다 교육활동이 중요하다. 그러니 교사도 교사지만 학생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학생을 위한 학생상담, 학생복지에 대한 개발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에 반해 교사를 위한 상담, 교사의 복지, 교직사회의 개선에 대한 조치는 찬밥신세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간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협의회'라는 이름의 회식이 종종 있기는 하나 다소 드문 편이며

세대간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며 공생하기 위한 길이 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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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발령을 받고 나서 몇개월 일한 뒤, 나는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왜냐면 내가 90년생인데 나를 도저히 다들 이해를 못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나..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어. 세대가 변하고 있는데 교직사회는 딱딱하게 굳어서 그걸 보지 못하고 있었다. - 변하는 교사보다 교육활동이 당장 급하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소감은. 

이건 내가 읽을 게 아니라 교감선생님이 읽어야 하니, 익명으로 하나 사서 교감선생님 책상위에 올려둘까? 였다.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종종 이렇게 일하는 건 '상식'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이렇게 딱딱한 교직 사회에서 절차로 남겨두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2021년, 나는 같은 교무실을 쓰던 40대 중후반 선생님들에게 뒷담화를 엄청 까였는데. (ㅋㅋㅋ)

이유는 뭐 90년생이 왔기 때문이었다. 

주된 까기의 내용은 '쟤는 맨날 조퇴써. 쟤는 금요일 오후면 자리에 있지를 않아.' 였다. 

 

나는 머리가 비상한 편이기 때문에(ㅋㅋㅋ) 그리고 손도 빠르고, 일도 몰아서 와장창하거나 집에 싸들고 가서 하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에는 별로 할일도 없고, 할일이 있으면 차라리 집에 가서 하는 게 더 좋았다. 

-보통 할 일은 행정업무가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수업활동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하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피해를 받을 건 없었는데 그냥 내가 조퇴한다는 이유로 뒷담을 깐 것. 

 

내가 그냥 땡땡이를 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또라이는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정당한 연가를 사용한 거였다. 

그래 내 연가 말이다. 

 

연가! 그니까 직장인으로 치면 연차. 반차. 게다가 우리는 수업은 다 하고 가야하니까 조퇴라고 해봤자 한두시간 집에 일찍 가는 건데??!!! 

내 할일 다 하고 나서 연차도 못 쓰냐고용.~ 제 권리입니다만?

 

부장교사가 한번은 나에게 '젊은 교사들이 별 다른 이유없이 조퇴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 나온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내가 잘 해석해보면.

'당신이 특별한 사유 없이 연가를 사용하여 조퇴를 쓰고 집에 가는 것에 대해서 나와 내 주변 동료 교사들이 아니꼽게 생각해서 뒷담을 한 적이 있다.' 였는데, 

내 딴에는 이상한 게 - 특별한 사유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연가 아니던가? 특별한 사유- 예를 들면 아프다든가- 하면 병가나 공가 등을 쓸 수 있잖아요. (?????) 

 

차라리 회사처럼 내가 자리를 비우면 명확히 업무에 차질이 생겨서 연차나 연가는 그것들을 고려하여 써야한다면 몰라.

나는 내 '행정업무'에 해당하는 것은 충분히 다 마치고 집에 조금 일찍 간 거였는데도 욕을 먹었다. 

실제로 내가 행정업무를 잘 못해낸다도 지적을 들은 적은 없다- 오히려 아주 잘 해낸다거나 혹은 과하게 한다는 평은 들어봤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세대간의 차이 같다. 

그들에게 이제 2000년생이 올텐데 우짜누.

 


 

 

교사들도 서로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역멘토링' 이라는 활동이 있던데. 

 

회사에서는 꼰대상사들이 젊은 사원들에게 치이지 않고 잘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조치도 하는 듯하고,

그것을 알아보려는 시도 등도 나름 이루어지는 것 같던데.

 

교직사회는 일단 포커스가 '학생'에게 맞추어져 있다보니 선배 교사들이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어보인다. 

 

<90년생이 온다> 나 <2000년생이 온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보다 알아두어야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를 하지 못할 거면 '이런 애도 있구나. 혹은 이런 애들이 이제 학교에 들어와서 교사를 하는구나.'를 알아두어야 귀한 인재를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힘들게 임용고시에 붙어놓고도 교직을 떠나는 젊은 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더이상 교사는 선호직업이 아니다. 

교육은 나라 발전의 가장 바탕이 되는 작업이고, 그만큼 유능한 인재들이 받쳐줘야 길게 보았을 때 우리나라가 잘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잘 이해하고 교육, 특히 유능한 교사들을 유치하고 잡아두는 데에 투자할 때가 왔다.

왜 더이상 교사가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지

행정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말고, 있을 때 잘하자고. 

 

 

 

 

이것은 반성문이다.

 

처음 병이 발병하고 나서 다녔던 합정역에 위치한 개인병원에서 의사선생님께 들었던 말.

'아픈 지연씨도 지연씨예요.'

 

 

그동안 나는 이 말을 마음에 깊게 새기며 지내왔다. 

아픈 자신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아픈 자신도 사랑해라, 라는 의미였을까?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비뚤어지게 오해하기 시작했다. 


 

억울한 마음이 컸다.

술을 마시면 버릇처럼 하던 말이 '저 왜 아파야해요?' 였다. 

'나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나 왜 아파야 해요?' 라는 말. 이런 생각.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동안 자위해왔지만,

이제는 알겠다. 

나는 자신을 아주 불쌍하게 여기는,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면서 '아픈 나'를 내가 사랑해야겠으니, '당신'들도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이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아픈 나도 나니까,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픈 내 모습도 다 사랑해야한다고 우겨왔다. 

그걸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그리고 사랑이라는 건, 아픈 나를 받아주는 거라고. 

 

아파서 내가 저지르는 안타까운 행동들도 다 '아파서 그랬구나'하고 넘어가줘야한다고. 

내 스스로 그래왔다. '아프니까'라며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잘못이 아니라고 여겨왔다. 

 

내가 종종 농담으로 '나 정신병자인데' 라고 말하는데,

친구가 나에게 한번은 '가불기네.' 라고 한 적이 있다. 그거 가불기라고, 그니까 병 얘기를 꺼내면 내가 다 이긴다고.

 


 

 

최근에 사고가 있었다. 

괴로워하는 나를 구하러 오빠와 새언니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와주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나를 쓰다듬어주는 새언니의 품에서 엉엉 울었다. 너무나 따뜻한 품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동안에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받았던 말이나, 서운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중에는 - '제가 약을 먹겠다고 했는데도 저를 가만히 뒀어요.', '저에게 피해의식이 있다고 했어요.'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새언니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주 따뜻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가씨가 아파서 정말 힘들고 괴롭겠지만, 아픈 사람 옆을 지키는 사람도 아주 힘들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는 말이었다.

 

솔직히 언니가 그냥 내 징징거림을 들어주고, 마냥 내편만 들어줄 줄 알았다. 

나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에서 애정을 가지고 하는 그 말이.. 그동안에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해왔는지, 나의 병에 대해서 또 병을 앓고 있는 나를 어떻게 비뚤어지게 봤었던건지.

 

3년 간의 행동과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후회와 부끄러움, 고마움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특히 애인이 그렇다. 

입장바꿔 생각해보면, 맨날 우울하다고 누워있어서 어디 나가지도 못 하고,, 무슨 일만 있으면 죽겠다고 하는 사람 옆에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지치겠는가. 

누구나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 마련인데, 애인이 사회복지사도 아니고,,, 참,,, 나 왜그랬지,, 

 

그동안 애인과 다투면

우울에 허덕이며 약을 처방 용량보다 더 먹고 자버리거나 감정을 잔뜩 실어 원망하는 문자를 보내거나 했던 것들. 

 

다 자기연민에 빠져 했던 추한 행동들. 

그리고나서 나는 '아프니까' 라고 스스로를 용서했다.

별별 잘못을 다 해놓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반성도 하지 않고

'아파서 그런거니까 개의치 말자'라고 자위하고 있었다. 

 

애인과 다투고 자해를 한 나에게 애인이 '너는 병을 무기로 쓴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당시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걸...? 

 

근데 언니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러게, '나 아픈데 나를 괴롭게 해? 나를 사랑한다면서. 그럼 나는 나를 해할거야' 같은 객기를 부린 게 맞다. 참 부끄럽지만..

나는 '나 아파요!' 하는 깃발을 흔든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칼을 휘두른 것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옆을 지켜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고 말이다.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치만 아파서 하는 나의 잘못된 행동들도, 내가 한 '나'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아픈 나도 나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감정을 조절 못해서 종일 우울에 빠져 있는다든지, 갑자기 당일에 약속을 파투낸다든지, 애인에게 무성의하게 연락을 한다든지, 

집안을 엉망으로 방치한다든지, 자신을 해한다든지 등등의 행동들. 

 

그 행동도 '내'가 한 행동이니 내가 책임지고 수습해야하는 것이 맞는건데. 

아픈 나도 나니까 말이다. 

아픈 내가 한 행동도 내가 한 행동이니까. 

 

그걸 이제야 알았다. 

 


 

 

죽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죽지 않고 쿨쿨이(조울증)과 같이 사는 법을 계속 알아가봐야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나, 그들을 위로하는 내용의, 혹은 우울증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비추거나, 자신의 행동이 병 때문이라는 걸 알려주는 책은 많지만. 

또 우울한 사람 옆에서 어떻게 해줘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책도 있고. 

 

근데 우울증과 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 병을 가지고도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사회 안에서 공생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는 못 본 것 같다. 

(특히 정치적으로 접근한 책들을 다 화가 나있어서 자기연민에 빠지기 더 쉬운 것 같다. 병을 크게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매몰되기도 쉽고)

 

아픈 건 잘못이 아니지만, 이미 아프기 시작한 걸 어떡해! 

몰아세우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나도.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싶어서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요. 

당신도 그렇겠죠? 

 

 

이제 잘 해보고 싶다. 

오늘의 반성을 잊지 않고 내일은 나아진 모습으로 살자.

 

하루하루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요즘이다.

자학행위나 약물자해를 한 적은 있지만,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손목을 긋거나 하는 자해는 한 적이 없다.

아니, 없었다. 

 

주변에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지만 달리 이유가 없어서, 이유를 답할 수가 없다. 

약과 술을 같이 먹으면 블랙아웃이 온다. 

행동 자체가 터무니없지는 않지만, 맨정신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들을 해버린다. 

 

어느 날은 담뱃불을 손목에 지졌다. 왼쪽 손목에 담배빵 자국이 여럿 생겼다. 

그날은 절연한 친구에게 원망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걸 알게 된 것은 여러날이 지난 후였다. 

 

피부과에 가서 담배빵 치료를 받는데, 흉터가 생길 거라고 했다. 

나의 과오가, 내 눈에 가장 잘 보이고 가장 자주 보이는 곳에 새겨졌다. 

흉터가 생길 거라고 하니 이제 누구에게도 숨길 수도 없을 것 같아 글을 쓰지만,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다.

나 같아도 무서울 것 같다. 내 주변 사람이 불타는 담배개비를 제 손으로 맨살에 부벼대는 사람이라면. 

 

지금은 많이 아물었지만 아직도 딱쟁이가 다 떨어지지 않았다. 

얼룩덜룩한 팔목을 보면, 나 참 별 쓸데없는 짓을 다 한다-싶다.


 

그날은 그저 잠에 들려고 했는데, 

술도 안 먹었는데 어느새 내 몸은 홍대 클럽 거리에 나가 있었다.

블랙아웃이 오기 전 기억으로는, 9시부터 문을 연 클럽에 혼자 앉아서 데낄라 샷을 6잔을 내리 목구멍에 부었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에 오니 발목은 삐어서 퉁퉁 부어있어 절룩거리며 걸어다니게 되었고, 머리통과 팔목, 엉덩이 구석구석 멍과 혹이 생겼다.

말그대로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잘도 집에 돌아왔다. 

 

이번에도 누군가에게 되도 않는 메세지를 보냈고, 

누군가와 몸싸움을 했거나 혼자 넘어졌거나 그랬겠지.

 

참 

쓸데없는 짓을 다 한다.


 

요즘 왜 사람은 자신의 '생'과 '사'를 선택할 수 없는가를 생각한다.

'생'이야말로, 마지 주어진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귀한 가치인 듯 평생 가스라이팅 당하고. 

'사'는 '생'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로로 치부된다. 

 

그런데 난 '생'을 받은 것이 썩 내키지 않는다. 

이것도 내가 선택하지 못했는데, '사'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원망스럽다. 

 

'해충박멸'

해충도 생명인데 말이지. 나도 해로운 인간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나도 독하고 집요하게 박멸 당해도 되는데 말이지. 

 

 

 

 

친구가 '지연 너 진짜로 죽지 마라' 라고 했다. 

나는 '왜?'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왜라고 하지말고 알겠다고 해야지. 다음에 다시 물어볼게. 그때 알겠다고 해.' 라고 했다. 

'그냥 알겠다고 해'

 

참. 왜냐고 되묻는 게 이상하긴 해.


 

친구가 '행복해보이던데' 라고 하길래,

나는 '찰나야, 나날이고 싶은데'라고 했다. 

 

친구는 좋은 표현이라고 이런 거 기록해두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웃기는 애다. 


 

내가 '속상하다'고 하니,

친구는 '내가 아는 너는 속상해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몽하는 사람인데, 왜이리 지쳤나.' 했다. 

 

그러게. 나다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쿨쿨이(조울증)때문이려나 기본적으로 생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나 기대를 별로 하지 않기도 한데 

남들이 흔히 말하는 '현타'를 맞으면 자살 충동이 세게 올 때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나는 컴퓨터고 누가 나에게 명령어를 입력한 것처럼 내 생각을 내가 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만히 놔둬도 혼자서 알 수 없는 글씨들이 써지고 지워지며 검은 화면이 채워지는 프로그래밍 코딩 화면 마냥 죽고 싶다는 생각과 어떻게 죽을 것인지 등등의 생각이 빠르게 와르르르 지나간다. 

 

마치 아주 쎄게 처 맞은 기분이다. 

보통은 헛짓거리하다가 '정신 차려!'일 텐데, 나는 살아보려다가 '그냥 죽자!'가 된다.

 

최근 그 빈도가 잦아졌다. 버릇인가 싶을 정도로. 

버릇처럼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또 은근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거 같기도 하고....

 


 

번개 맞은 것처럼 강한 자살 충동이 왔을 때 대처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딱히 만든 건 아니고, 이렇게 해보니 효과가 좋아서..루틴이 되었다. 

 

STEP1. 빠르게 옷을 챙겨입고 찬바람을 쐐러 나간다. 
STEP2. 흥분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줄담배를 피운다. 
STEP3. 엘레베이터나 화장실 거울을 보며 내가 얼마나 예쁜지 생각한다. 
 - 그리고 살면서 만난, 영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먹고 잘사는 인간들을 떠올린다. 
STEP4. 자살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묵주기도를 한다. 

 

 

이대로 하면 꽤 빠르게 잦아들더라....

그니까.... 담배는 내 치료제라고........... 


 

가장 버림 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애인은 아주 이른 새벽,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다.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인지 한밤중인지 경계가 애매한 새벽 4시.

매일같이 누구보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내가 눈을 뜨기 전, 그러니까 아침이 오기도 전에 그날의 첫 메시지를 남긴다.

 

나의 병에 '쿨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며칠 후였나, 어김없이 04시 56분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지연, 새벽아 춥다 따듯하게 자 사랑해 

 

'새벽아' ?

오타였을까? '새벽 아침'이라고 치려고 했던 걸까? '새벽이 춥다'고 하려던 걸까?

마치 나를 '새벽'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 그 우연한 오타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내가 만약 '새벽' 같은 사람이라면, 

나의 병인 '쿨쿨이'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쿨쿨이'보다 먼저 일어나서 '나'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새벽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연인지, 운명인지

어쩌다가 '새벽'이라고 불린 나는, 그게 나였으면 했다. 

 

그래서 그에게 나를 '새벽'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였다. 

 

고요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밝은 빛도 따스한 햇볕도 없는 차가운 밤이 아니라 

아침을 기대하는, 모든 생명이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오늘 하루의 남은 시간을 향유하는

그런,

새벽을 사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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