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쿨이(조울증)때문이려나 기본적으로 생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나 기대를 별로 하지 않기도 한데 

남들이 흔히 말하는 '현타'를 맞으면 자살 충동이 세게 올 때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나는 컴퓨터고 누가 나에게 명령어를 입력한 것처럼 내 생각을 내가 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만히 놔둬도 혼자서 알 수 없는 글씨들이 써지고 지워지며 검은 화면이 채워지는 프로그래밍 코딩 화면 마냥 죽고 싶다는 생각과 어떻게 죽을 것인지 등등의 생각이 빠르게 와르르르 지나간다. 

 

마치 아주 쎄게 처 맞은 기분이다. 

보통은 헛짓거리하다가 '정신 차려!'일 텐데, 나는 살아보려다가 '그냥 죽자!'가 된다.

 

최근 그 빈도가 잦아졌다. 버릇인가 싶을 정도로. 

버릇처럼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또 은근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거 같기도 하고....

 


 

번개 맞은 것처럼 강한 자살 충동이 왔을 때 대처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딱히 만든 건 아니고, 이렇게 해보니 효과가 좋아서..루틴이 되었다. 

 

STEP1. 빠르게 옷을 챙겨입고 찬바람을 쐐러 나간다. 
STEP2. 흥분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줄담배를 피운다. 
STEP3. 엘레베이터나 화장실 거울을 보며 내가 얼마나 예쁜지 생각한다. 
 - 그리고 살면서 만난, 영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먹고 잘사는 인간들을 떠올린다. 
STEP4. 자살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묵주기도를 한다. 

 

 

이대로 하면 꽤 빠르게 잦아들더라....

그니까.... 담배는 내 치료제라고........... 


 

가장 버림 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름'은 대상을 다른 것들과 구별 지어 준다.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그것을 딱 집어 말할 수 있는, 특정한 하나의 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시,

김춘수의 <꽃>이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또 많은 문화권에서 이름을 짓고 부르는 행위는 대상에 대한 지배력의 행사를 의미한다. 

 

소설 <해리포터>에서 악인 볼드모트는 너무 두려워서 그 이름을 부르기 조차 무서운 존재로 표현된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구마사제는 악마의 이름을 알아야 인간의 몸에 들어간 악마를 내보낼 수 있다. - 김범신 베드로(김윤석)가 이영신(박소담)의 눈을 가리고 이름을 반복해서 묻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일본의 만화 <데스노트>에서 상대의 이름을 알아야 죽일 수 있다는 설정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양극성 장애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깊게 새겨진 내용은 

조울증은 완치의 개념이 없고,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외래를 볼 때도 가끔 교수님께 '나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곤 했는데,

그러면 항상 되물으셨다. '낫는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냐'고. 

들었던 답변은 약은 평생 먹어야 할 거고, 약을 먹어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가 낫는 거라 생각하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병과 죽는 날까지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병을 싸우거나 극복해야하는 대상으로 삼으면 참 고달프겠구나, 병을 미워하면 정말 괴롭겠구나 싶었다. 

 

주변에서 종종 나에게 '이겨내야지'라는 표현을 한다. 

내가 조울증을 평생 앓는다면, 과연 이겨낸다는 건 뭘까? 나는 지금 싸우고 있는 건가? 그럼 지는 것도 있는 걸까? 

 


 

 

'미우나 고우나 내 새끼' 같은 마음으로 병을 대하기로 했다. 

병을 혼쭐내주고 말 안 듣는다고 원망할 게 아니라, 

어르고 달래고... 우쭈쭈 해주고....... 얘도 괴롭지 않게 달다구리도 사주고 그러면서 같이 살아보려고... 

 

그래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보호자와 이야기할 때에도 귀여운 이름을 지어 병을 부르면,

매번 본인이 환자고 질병을 달고 있다는 인식을 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을 경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내 조울증의 이름은 '쿨쿨이'로 지었다. 

어릴 때 보던 만화 <방가방가 햄토리>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 항상 양말 속에 들어가서 잠만 자는 햄스터 캐릭터가 있는데, 그 캐릭터의 이름에서 따왔다. 

 

너무 날뛰지 말고(?) 잠이나 자라는 ,,,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 꽤나 귀여운 듯? ㅎㅅㅎ

- 그리고 ,,, 기면증까지 있는 나의 병에게 꽤나 적절하다.

 

이건 딴소리인데, <방가방가 햄토리>는 주인이 외출했을 때 햄스터들이 철창을 탈출(?)해서 어디 무슨 나무 밑에 지하 같은 데에 모여가지고, 노는 그런 스토리의 만화인데.... 으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햄스터는 수명이 1.5년~2년정도라고 하던데.. 그들의 스토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나....

 

 

아 참, 그리고 우연히도 오늘이 햄토리 쿨쿨이 생일이더라! 축하해 ㅎㅅㅎ


 

 

쿨쿨아, 잘 부탁해! 

 

 

참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계기가 다소 지저분하여 유감이지만, 이 기막힌 감정을 뚫어낼 곳이 달리 없기 때문에 글에다 쏟아내고자 한다. 

 

꽤 오랜 기간 병을 앓으면서, 또 나의 병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면서

사람들이 정신병(특히 우울증과 조울증의 차이)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또 안일하게 결론짓는지... 형언하려면 한 세월이다.

아픈 당사자로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결국 그것-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그래서 어떤 고통을 겪고, 일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 역할은 나 자신이다.

매일같이 '왜 살아야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가지며 삶의 회의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나의 아픔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 지치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돼?'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

 


2024년 겨울 이후,

나는 한 종교의 청년회에 속해 활동하고 있었고, 청년회 안에서 서로 취미가 맞는 사람끼리 만든 소모임에도 여럿 들어가 있었다. 

( 나는 모태신앙이다. 청년회 활동은 형제-오빠의 권유로 하게 되었다. 오빠는 당시 병세가 악화되어 무기력하게 지내던 내가 청년회 활동을 통해 동네 친구와 취미 활동도 하고, 함께 기도도 하며 우울감을 희석시켰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그 해 여름날,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청년회 단톡방에서 메신저상으로 어떤 두 청년이 의견 다툼을 하게 된 것. 대략 종교적인 내용이었다. 

편의상 두 사람을 각각 '열매'와 '마리'라고 하겠다. 

 

열매와 마리는 전체 청년회 단톡방에서 다소 날선 말을 몇 차례 주고 받았고, 열매는 곧 단톡방을 나가버렸다.

( 사실 열매는 종종 그랬던 사람이다. 청년회 활동을 아주 오래했지만, 와중에 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단톡방을 나가고 또다시 초대받는 일을 으레 반복했던 사람이다. )

 

전체 단톡방을 나간 열매는 소모임 단톡방에서 마리의 뒷담화를 시작했다.

이때 열매가 마리를 욕하며 쓴 말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면서도, 혐오적인 의미를 가득 담고 있는 저급한 표현이었다. 

 

" 정신병이 틀림 없는 듯 " 

 

 

'정신병이 틀림 없는 듯', '정신병이 틀림없는 듯', '정신병이 틀림없는 듯', '정신병이 틀림없는 듯'........ 

맥락상 누가 보아도 열매는 '정신병'에 혐오적인 의미를 담아 사용하고 있었다. 

 

( 마리는 꽤 중증으로 우울증을 앓은 경험이 있고 또 그 단톡방에는 현재진행형으로 중증 정신병 환자인 나도 있었다. 마리의 병력을 열매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휴직 등)로 중증 정신병 환자라는 건 열매도 알고 있었다. )

 

열매가 자신의 화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올바름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되는 대로 뱉은 말이었겠지.  

 

안타까운 건 해당 소모임 단톡방에 마리도 있었다는 것. 

( 마리가 단톡방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열매는 마리가 없는 것으로 착각했다. )

마리는 차분하게 열매에게 다시 반박하는 메세지를 보냈고, 열매는 소모임 단톡방도 나가버렸다. 

 

열매가 나간 후, 나는 곧바로 해당 소모임 단톡방에 '정신병에 혐오적 의미를 담아서 쓰지 않았으면 한다' 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이 사건에서 상처를 받은 건,

당사자인 마리는 물론이거니와 실제 중증 정신병 환자인 였다.  

 

오늘을 죽느니 사느니 하는 나의 고통과 아픔이 다른 이에게는 모욕으로 쓰인다니.

정신병.. 정병..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정신병이라는 말이 욕으로 쓰이는 걸 직접 보니, 진짜 정신병자-나는 참으로 비참했다. 

며칠을 얼마나 울었을까.

나는 당사자도 아닌데. 내가 욕을 먹은 당사자도 아닌데, 자꾸만 슬퍼서 눈물이 샜다. 

 

오빠와 청년회 임원들에게 마리와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였고 

여러차례 열매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열매는 끝내 나에게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 이때 열매가 마리에게는 개인적으로 사과를 했다. 나에게 사과하는 일에 대해서는 '정신병'이라는 말을 나에게 직접한 것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해야 하냐는 식으로 반응했다고 전해 들었다. )  

 

우리 가족(나와 오빠, 새언니)은 내가 열매의 사과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이런 기분으로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청년회를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청년회의 여러 사람들이 우리를 극구 말렸다. 나가지 말라며, 열매가 사과하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른들까지 애쓰시는 정성스러운 설득에.. 우리는 열매의 사과를 기다리며 청년회에 남았다. 

 

 

그게 2024년 여름이었다고 했지? 

해가 바뀌고, 2025년 1월이 되어서도 나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

열매는 본인이 청년회를 나가면 될 거라며, 청년회에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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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사고가 심해져 11월말경 ECT(전기경련치료)를 받으러 입원했던 나는 청년회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 세번째 받는 시술로 유지치료 목적이었는데, 4회를 받았으나 그전만큼 효과를 보지 못했다. ) 

어영부영 무기력하게 지내던 나는 해가 넘어가고 1월 2일, 술을 먹고 처음으로 자해를 했다.

상처가 꽤 심했다.

애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약을 발라 주었고, 나에게 먼저 같이 기도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

 

그렇게 애인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러 간 그날, 나는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열매를 보았다. 

모르는 척 했다.

그냥 모르는 척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려던 참이었다.

새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용을 듣자 하니 열매가 어물쩍 청년회 식사자리까지 왔고, 그것을 본 오빠가 식당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는 것. 

 

언니와 오빠는 나에게 '신경 쓰지 말라'며 푹 쉬라고 하였고, 

알겠다고 하며 괜찮은 척 전화를 끊은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에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차에 시동을 걸어 곧장 열매가 있는 청년회 식사자리로 돌아갔다. 

(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열매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불쑥 식사자리에 나타난 것이, 그 자리에 있던 자신 때문에 애쓰고 속썩었던 사람들을 무시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 오빠가 있었고, 오빠가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 나는 분노했다. 혈육이라고 과하게 편드는 것이냐, 싶기도 하겠지만 오빠는 누가 보아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정도로 청년회에서 상당히 맡은 역할이 크고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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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를 잡고 '흥분하면 안 돼'라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열매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쌍욕이었다. 

화를 내는 나에게 열매는 가소롭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싸우러 왔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달려드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상황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고 했다. 

 

분명 열매는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이었고, 나는 사과를 받아야하는 사람이었는데? 

 

누군가에겐 죽을병이, 누군가에겐 웃긴 상황이 되는 거지. 

누군가에겐 죽을병이, 누군가에겐 일방적으로 화낼 만한 것도 아니라 투쟁해야 하는 일인 거지. 

 

 

--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열매를 불렀다. 

열매는 '나부터 얘기할까?' 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열매는 당시에 나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었다고 한다.

분명히 사과한다는 뜻을 전하였으나 여러 사람을 통해 말이 오고 가면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하였는데,

아직 사실관계는 알 수 없다.  

 

열매가 '정신병'을 욕으로 사용하고,

상처를 받은 나는 당시에 오빠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오빠의 권위와 권력 뒤에 숨어있는 여동생과 여동생을 대변하느라 일을 크게 벌이는 오빠의 모습으로 비쳤나 보다. 

나보고 열매에게 직접 기분 나쁜 걸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그걸 설명하며

내가 슬프다고 호소하고 애쓸 바에, 나는 번개탄과 청테이프를 주문하는 조울증 환자라고 대답하고 싶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는 당연한 건데. 나를 피해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2025년 1월 5일, 

불쑥 청년회 모임에 나타난 열매에게 어찌되었든 나는 사과를 받았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열매가 나에게 사과를 하며 했던 말이 머리에 맴돌아서. 

열매는 변명을 하듯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고, 지금도 계속 먹고 있어

 

 

정신병을 비하할 의도는 없었고, 그저 욕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런데 내가 상처받을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열매 본인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 본인도 정신병을 앓고 있는데 그럴 리가 있겠냐- 는 의미로 한 말 같았다. 

 

이 말이 내 머리에 계속 맴돌았던 이유는

내가 이런 말을 듣는 이유가 뭘까? 계속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고,

묘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계속 짱구를 굴리던 끝에 이제 명확히 말할 수 있어서 이곳에 기록해 두려고 한다. 

 


 

 

1. 나는 양극성장애(조울증)이다.

2. 조울증은 우울증과 다른 질병이다.

  - 예를 들면, 조울증은 항우울제를 처방하여 치료할 수 없다. 

  - 그러니까 급체를 하든, 장염에 걸리든 구토를 하겠지만 소화가 위에서 안 되는지, 장에서 안 되는지는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 조울증과 우울증 모두 우울 삽화를 경험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혀 다른 병이고. 치료 방식이나 증상 양상 등도 매우 다르다. 

3. 우울증을 '진단' 받은 환자와 단순히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먹는 환자는 다르다. 

  - 요즘 소화가 잘 안 되어서 소화제를 처방받아 먹는 환자나 카베진을 챙겨먹는 사람과, 위염이나 위암에 걸린 사람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

  - 정신과는 환자와의 말을 통해 임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단을 받으려면, -그러니까 의사의 진단서를 받거나 하려면- 최소 3개월정도는 꾸준히 내원하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 

  - 감정 혹은 수면 등에 문제가 있어서 항우울제, 수면제 등을 처방받아 복용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우울증 환자인 것은 아니다. 단기복용으로 끝날 수도 있고. 

 


 

 

그동안 내가 어떤 동력으로 살아왔는지,

남들은 왜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자살이 왜 금기시되는 것인지,

나는 죽고 싶은데, 왜 나의 생과 사를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인지 매일 생각하고,

 

참 뭐랄까..

살기도 귀찮고, 죽기도 귀찮은 나에게

-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살기도 귀찮고 죽기도 귀찮음. 

 

열매의 말은

웃겼다.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얼마나 무지한지. 

열매가 우울증 환자인지 기분이 일상에 얼마나 지장을 주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알 바도 아닌 게 실제 우울증 환자라면 저런 말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니까 약간 이런 거지.. 죽네사네 투병하는 암환자한테 -예를 들면 간암 환자한테, 자기도 간장약 챙겨먹는다는 거랑 같다고. 

 


 

 

정말로 나와 비슷한 투병 경험이 있어서, 마음으로 공감해 주는 친구도 만났었다. (사실 그게 마리임..ㅋ) 

그런 친구의 위로와 관심은 나에게 아주 큰 용기가 되기도 했고

-정신질환 환자는 심리적으로 방어적이고, 무기력한 경우가 많아서 ... 도움에 '부응'해야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고, 다가가는 것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데,  마리는 그 선을 잘 지키며 다가와 준 유일한 친구.  

나에게도 그런 친구는 잘 자라고 있는지 종종 확인하는 화분이 되기도 한다. 

 

우울증은 많이 알려져있지만,

양극성장애(조울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서점에도 보면 조울증과 관련한 내용은 우울증에 대충 섞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조증 삽화를 한번이라도 경험하면 양극성장애로 치료 방향을 바꾸는데,

그래서 내가 입원했던 병동에서 만난 환우들은 다수가 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우울증보다 조울증이 더 수가 많은 듯 보였다. 

 

 

정신과 질환은 뭐 어디 잡고 쓰러지거나 앓아눕는 병이 아니니까 

sns를 하거나,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살아서(?) 연애를 하거나, 사회생활도 좀 하거나 이러면 별로 안 아프다고 대충 확증편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정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도 참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좀 봐달라, 나는 아프니까 배려해달라 이런 엄살이 아니라,,, 아픈 척하며 병을 무기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진짜 마음처럼 안 되는 게 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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