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2019년 내가 교직사회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갑갑함이 떠올라서.
최근 <2000년대생이 온다> 라는 책을 읽었다. 내가 교생 때 가르쳤던 02년생 제자들이 이제 막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 심지어 같은 교사가 된 학생도 있고. 유튜브 채널 '숏박스' 나 'SNL' 의 MZ오피스 등을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 세대의 90년생과 Z세대/알파세대의 00년생들이 부딪히기 시작하는 상황들이 코미디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이제 90년생은 온 지 한참 되었다는 뜻. 그들도 점점 기득권층에 가까워 지고 있고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하는 위치에 왔다. 시대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세대도 그 속도에 맞추어 무섭게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90년생)도 사회에 들어서고 있는 2000년대생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내가 겪은 교직사회는 양면성이 짙다.
한 면은 교사들끼리 마치 회사처럼 서로 만나고 도와가며 일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주 흔하게)
한 면은 개인 교사의 활동을 다른 교사가 관여하거나 어떻게 진행되는지 엿보기조차 매우 힘든 구조이다.
전자는 행정 업무에 해당하고, 후자는 교육 활동에 해당한다.
2019년, 2월까지만 해도 쌩얼에 츄리닝이나 입고 다니던 고시생이 3월부터는 갑자기 멀끔하게 차려입고 교육전문가 행세를 해야한다.
전에 글에도 쓴 바와 같이, 신규 교사는 보통 담임을 준다.
담임 기피 현상이 강하고 신규 교사는 업무 착임계(?)를 쓸 시간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우습게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신규교사임은 보통 철저히 감추려고 한다.
- 나 어려보이지만 얕보지 말라는 기대(?)로 아이들이 짖궂게 '선생님 몇년차예요?' 라고 물어보거나 '선생님 올해 처음이에요?'라고 물어봐도 한사코 비밀이라며 할만큼 해봤다는 뉘앙스를 준다.
그렇게 어설프지만 전문가행세를 하며 조종례, 청소지도, 상담 등을 진행하고,
수업시간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며 배테랑 교사인냥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한다.
교육자로서 오롯이 맡아 운영하는 수업시간, 학급운영 등에서는 나의 세대적 사고방식과 철학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선배 교사나 관리자(교장감)이 알 길도 잘 없으며,
끽 해봤자 살짝 엿보는 정도인데 그걸로는 수박 겉핥기, 그니까 수박의 맛은 보지도 못하는 정도인 것.
그러니 내가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선배 교사에게 수업에 대한 조언이나 지도를 얻기는 힘든데,
선배 교사들도 어찌나 자기일이 많고 바쁜지... 그런 행동이 민폐로 느껴질수 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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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업무, 학급 운영, 당장 오늘 세네개씩 들어가야하는 수업준비도 버거운데 행정업무는 또 얼마나 낯설은가
행정업무야말로 임용고시에서 공부한 적도 없기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선배교사들에게 배울 수 밖에 없다. 질문 투성이. 물음표 살인마....
선배 교사들도 각자 맡고 있는 행정업무가 있고, 교육활동도 해야하고.
특성이 너무나 상반되는 일들을 여러가지 떠맡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이런저런 질문을 수시로 하기란 참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해야지 행정이 굴러가기 때문에 어찌저찌 부장교사에게 특히 도움을 많이 구해서 업무를 수행하곤 한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교육활동' 의 특징과 '다른 교사와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행정업무'의 특징이 섞이고,
그리고 학교라는 기관의 운영 목적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교직사회의 요상스러운 문화이다.
학교의 주 업무는 교육활동이다. 무엇보다 교육활동이 중요하다. 그러니 교사도 교사지만 학생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학생을 위한 학생상담, 학생복지에 대한 개발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에 반해 교사를 위한 상담, 교사의 복지, 교직사회의 개선에 대한 조치는 찬밥신세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간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협의회'라는 이름의 회식이 종종 있기는 하나 다소 드문 편이며
세대간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며 공생하기 위한 길이 되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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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발령을 받고 나서 몇개월 일한 뒤, 나는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왜냐면 내가 90년생인데 나를 도저히 다들 이해를 못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나..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어. 세대가 변하고 있는데 교직사회는 딱딱하게 굳어서 그걸 보지 못하고 있었다. - 변하는 교사보다 교육활동이 당장 급하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소감은.
이건 내가 읽을 게 아니라 교감선생님이 읽어야 하니, 익명으로 하나 사서 교감선생님 책상위에 올려둘까? 였다.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종종 이렇게 일하는 건 '상식'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는 아니었는데,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이렇게 딱딱한 교직 사회에서 절차로 남겨두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2021년, 나는 같은 교무실을 쓰던 40대 중후반 선생님들에게 뒷담화를 엄청 까였는데. (ㅋㅋㅋ)
이유는 뭐 90년생이 왔기 때문이었다.
주된 까기의 내용은 '쟤는 맨날 조퇴써. 쟤는 금요일 오후면 자리에 있지를 않아.' 였다.
나는 머리가 비상한 편이기 때문에(ㅋㅋㅋ) 그리고 손도 빠르고, 일도 몰아서 와장창하거나 집에 싸들고 가서 하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에는 별로 할일도 없고, 할일이 있으면 차라리 집에 가서 하는 게 더 좋았다.
-보통 할 일은 행정업무가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수업활동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하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피해를 받을 건 없었는데 그냥 내가 조퇴한다는 이유로 뒷담을 깐 것.
내가 그냥 땡땡이를 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또라이는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정당한 연가를 사용한 거였다.
그래 내 연가 말이다.
연가! 그니까 직장인으로 치면 연차. 반차. 게다가 우리는 수업은 다 하고 가야하니까 조퇴라고 해봤자 한두시간 집에 일찍 가는 건데??!!!
내 할일 다 하고 나서 연차도 못 쓰냐고용.~ 제 권리입니다만?
부장교사가 한번은 나에게 '젊은 교사들이 별 다른 이유없이 조퇴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 나온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내가 잘 해석해보면.
'당신이 특별한 사유 없이 연가를 사용하여 조퇴를 쓰고 집에 가는 것에 대해서 나와 내 주변 동료 교사들이 아니꼽게 생각해서 뒷담을 한 적이 있다.' 였는데,
내 딴에는 이상한 게 - 특별한 사유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연가 아니던가? 특별한 사유- 예를 들면 아프다든가- 하면 병가나 공가 등을 쓸 수 있잖아요. (?????)
차라리 회사처럼 내가 자리를 비우면 명확히 업무에 차질이 생겨서 연차나 연가는 그것들을 고려하여 써야한다면 몰라.
나는 내 '행정업무'에 해당하는 것은 충분히 다 마치고 집에 조금 일찍 간 거였는데도 욕을 먹었다.
실제로 내가 행정업무를 잘 못해낸다도 지적을 들은 적은 없다- 오히려 아주 잘 해낸다거나 혹은 과하게 한다는 평은 들어봤어도.
아무리 생각해도 세대간의 차이 같다.
그들에게 이제 2000년생이 올텐데 우짜누.
교사들도 서로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역멘토링' 이라는 활동이 있던데.
회사에서는 꼰대상사들이 젊은 사원들에게 치이지 않고 잘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조치도 하는 듯하고,
그것을 알아보려는 시도 등도 나름 이루어지는 것 같던데.
교직사회는 일단 포커스가 '학생'에게 맞추어져 있다보니 선배 교사들이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어보인다.
<90년생이 온다> 나 <2000년생이 온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보다 알아두어야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를 하지 못할 거면 '이런 애도 있구나. 혹은 이런 애들이 이제 학교에 들어와서 교사를 하는구나.'를 알아두어야 귀한 인재를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힘들게 임용고시에 붙어놓고도 교직을 떠나는 젊은 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더이상 교사는 선호직업이 아니다.
교육은 나라 발전의 가장 바탕이 되는 작업이고, 그만큼 유능한 인재들이 받쳐줘야 길게 보았을 때 우리나라가 잘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잘 이해하고 교육, 특히 유능한 교사들을 유치하고 잡아두는 데에 투자할 때가 왔다.
왜 더이상 교사가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지
행정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말고, 있을 때 잘하자고.
현 평가 방법에 대한 우려의 의견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 (아래 문장은 글의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하였다)
(가) 비판적 창의력과 같은 역량은 객관식 지필 평가로 평가하기가 여렵고, 관찰 보고서와 같은 과정 평가, 수행평가가 적합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의심받고 있다.
(나) '공정함'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 볼 시기이다. 수능은 학생이 결과를 어떠한 방식으로 얻었는지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학습 과정을 평가한다는 면에서는 가장 불공정한 평가로 볼 수 있다.
(다)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강조하고 있는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를 실현하기에 객관식 평가와 수능은 걸림돌이다. IB는 다른 방향에서 내신과 입시를 바라보게 하는 대안으로서 가치가 있다.
동의하지 않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색이 입혀진 문장은 동의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래 문장은 글의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하였다)
(가) 혁신 학교를 활용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교육 목표와 수업 방법을 세계에서 인정하는 수준으로 설정하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IB를 도입해야 한다.
: 글로벌 인재를 기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 나라의 국가 교육과정까지 세계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교육 목표나 수업 방법 등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에 맞게 구성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왜 우리만의 새로운 교육과정을 꾸려보지도 않고 IB라는 틀 안에 욱여넣으려고 하는 걸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사대주의 같다)
(나) IB 학교의 수업 목적 또한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 이 책에서는 IB가 입시를 하는 데에 얼마나 좋은지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교사들을 설득시키기엔 적절하지 않다. 교사는 평가를 결과로 보지 않는다. 평가는 학생의 학습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공교육에서는 특정 시험의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수업의 근본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글의 본문과 관련하여
의문이 생기는 내용을 정리하고, 질문을 달아보겠다. 내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물음이니.. 오해하지 마시길..ㅎ
서구 선진국은 대부분 전 과목에서 대규모 논술형 대입 시험을 치른다. 그래도 채점의 공정성 문제 없이 수십 년간 잘 운영해 왔다. .... 더욱이 이들 국가의 고등학교에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이 가장 정상화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입시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입시 위주의 교육은 공교육 정상화 및 내실화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가) 전 과목 논술형 대입 시험을 채점의 공정성 문제 없이 수십 년간 잘 운영해온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가? 채점관, 기준, 절차 등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하다.
(나) 입시는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데, 입시 위주의 교육이 공교육 정상화 및 내실화를 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까?
'동일한 의미'는 논리적 비약 같음...
IB도 결국엔 '점수'가 부여되던데. 점수를 결과로 보여주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을까?
(다) 서구 선진국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는 게 옳을까? 대학 진학에 대한 나라별 태도는 고려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것 대신 서구는 비싼 사립학교를 보내 대입을 준비하는데, 이것이 사립학교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닐까? (프랑스 바칼로레아를 조금만 검색해보면, 고득점 학생이 많은 학교들은 사립학교가 대부분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라) 입시 위주 교육(-논술형 입시)으로 인성 영역, 다중 지능에 대한 교육과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채점 기준이 있는 한 결국은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글쓰기 형식이 되지 않을까?
(마) 학습자가 어느 정도 수준의 글을 쓰는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교육과정을 모두 마쳤을 때 학습자에게 요구하는 기본 지식 수준이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의 수준/ 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한국어 IB디플로마의 질 관리를 위해, IB본부에서는 디플로마의 필수 요건인 6개의 선택교과와 3개의 필수 교과 중 2개의 선택 교과를 영어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정책을 제시한다. ... 교육청이 IB본부와 합의할 때 이 부분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는데, IB 본부에서는 어차피 영어 과목은 영어 시험이고 이를 준비하며 영어로 장문의 에세이를 쓰고 말하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한 과목 더 영어로 시험 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IB 학교 출신들은 수시 전형에 지원하고 있는 IB 최종 점수는 1월 초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수시 일정과 맞지 않다. 현재 제주 교육청과 대구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것은 IB 최종 점수가 아니라 IB 식으로 본 고사의 내신 점수와 과세특을 기록한 생기부에 기반하여 학종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가) 이제 막 한국에서 IB 교육을 도입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학습부담과 지원할 수 있는 대학 입시 전형에서의 제한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IB 교육과정을 진행한다면, 현재 한국 대학에서 요구하는 고사 성적도 따로 학교에서 마련해야하고, IB 디플로마 취득 및 점수는 수시 전형에 반영하기에는 성적이 시기상 늦게 나오는데,
대입을 위해 학교 교육과정과 별개로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하는 학습자의 부담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길이 나 있다고 해서 좁아터진 가시밭길에 아이를 밀어 넣을 수는 없다. 대학 입시 전형이 IB교육과정을 상당 부분 인정해 주지 않으면, IB를 해보려는 학교- 교사와 학생- 모두 과도한 학습량과 업무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학생의 인터뷰에는 공통적으로 학습과 과제량이 너무 많다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인터뷰 내용은 학습 부담 증가가 단순한 우려가 아닌 결과로 이미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나) IB 학교에서 실시하는 프로젝트형 평가나 소논문 등의 좋은 교육 프로그램만 선택하여 반영하고,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입시 제도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도 되는데... 왜 꼭 IB를 대대적으로 도입해야할까?
이 책에서도 결국에는 한국형 바칼로레아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IB가 필수적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래 내용과 관련해서는 조금 감정이 실렷슴..)
우리 교육 문제의 가장 큰 범인은 단언컨대 공교육이다. 우리 공교육은 사교육을 받을수록 유리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학교 시험도 인근 학원 @@교 내신반에 다니면 더 유리하다. 왜 학교에서는 시험 문제를 학원들이 예측할 수 있게 낼까?
(가) 교육에서 '유리'하다는 말이 성립하는 명제인가? 높은 점수를 받는 데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공교육의 결과는 점수로 나타나지 않는다. 공교육의 결과를 전인적 성장의 측면에서 보았을때 실제로 사교육을 받을수록 유리한 구조인가?
(나) 학교 시험이 인근 학원 @@교 내신반에 다니면 더 유리하다는 주장은 어떻게 도출된 거지?
교사들이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시험 문제를 학원이 예측할 수 있도록 내지 않는다. 수업을 듣지 않으면 시험에서 고득점할 수 없게 수업을 설계하고 문제를 출제한다.
교과서의 내용을 재구성하거나 외부지문으로 수업하는 선생님들이 상당히 많다. 교사를 머라고 생각하는겨 장난하나;
그리고 교사는 수업하고 문제만 내는 게 아니라 생활교육도 하고 행정업무도 한다. 맨날 단위 학교에서 낸 학습지와 문제들을 뚫어져라 분석하고 학생들에게 양치기로 문제를 잔뜩 풀어대도록 하는 학원이랑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지?
(다) 우리 교육 문제의 범인을 공교육이라고 단언하는 경솔함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우리 교육 문제의 범인은 하나의 단어로 간단히 말할 수 없다. '공교육'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는 근거는?
만약 그 근거가 사교육을 받을 수록 유리하게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면, 국가 교육의 목표/결과에서 학업 성적은 아주 일부라는 것은 현재 국가교육과정 문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내 교육을 통해 싸가지 없고 아는 것 많은, 글 잘 쓰는 인간보다 ... 조금 아는 것이 적고 표현은 잘 못 해도 남을 배려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인간을 키워내고 싶다.
이 글을 통해 우리 교육 문제의 범인에 또 누구있는지 알 것 같다.
이런 글을 펴내는 사람들은 교육계의 담론을 형성하고 체계를 바꾸는 데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일텐데... 안타깝다.
또 쓰다보니 길어져서 다음 글에서 이어서 쓰겠다...
일단 IB가 입시제도를 바꾸자는 것인지, 교육과정을 바꾸자는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학습자의 사고를 꺼내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IB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왜! 하필!! IB 인지!
IB의 불편한 점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굳이 IB로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욱여 넣으려고 하는지가 해소가 안되는 가장 큰 의문점이다.
아마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말이 왔다갔다 하는 듯 하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개떡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의 논리를 찰떡같이 최대한 정리하여 이해 해보자. ^ㅅ^
동네 알라딘에서 읽을 만한게 뭐가 있나,,, 찾아보면서 책장을 둘러보던 중.. 이제 없나보다~하던 찰나에 내 눈에 띈 이 책.
2023학년도 학교에서 IB탐색학교를 진행했었다. 나는 2학기 복직이라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넘치는 양의 IB연수를 소화하시느라 힘들어보였다.
2024학년도 IB관심학교에서 후보학교까지 진행하려는 관리자와 교원들 사이에 의견대립이 팽팽했다. 얼굴이 벌개지도록 이야기를 나눴으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교원의 상당 수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학교는 IB관심학교가 되었다.
(후보 학교 신청은 별개로- 다시 의견을 모은다고 한다.)
IB관심학교가 되었지만. IB가 뭔지를 모르겠다.
학교에서 IB연수를 다녀오신 선생님들께서 서너번 IB 교육에 대해 교내연수를 진행하셨지만, 항상 하시는 말씀 중에 하나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였다.
연수를 하시는 분이 모르겠다고 말하시다니!
그러니까 연수를 들어도 도통 뜬구름 잡는 이야기뿐, 실제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IB가 실현될 것인지에 대한 장면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이번 업무분장에 IB업무가 포함된 자리를 썼고, 2024학년도에는 나도 IB를 공부하고 교육과정도 짜봐야할 것 같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있기엔 불안하려던 차에 잘됐다고 생각해서 얼른 책을 집어들고 집으로 왔다.
서평
일단... 이 책은 나처럼 IB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는다. 이걸 읽어도 결국 IB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현직 교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IB로 어떤 교육과정을 실현할 수 있을지-어떤 수업/평가를 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IB 교육과정을 우리나라에 도입해야 한다. 꼭 IB여야 한다!! 다른 건 안된다!! IB 최고!!'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주장까지 이어지는 논리적 과정이 비약이 심하고, 표현이 자극적이라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혹시 IB지능형 안티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수준.
(그리고 IB 도입을 반대하는 의견을 비판하는데, 비판의 논리도 수준이 낮아서 설득력이 없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 시험이 서논술형 시험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일단 선다형, 단답형 문항 폐지를 주장한다.
현재 수능 및 내신 시험 문제는 학습자의 단순 지식만 물어보고, 변별을 위한 문제일뿐이라 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습자의 사고 능력 성장이 저해된다는 의견이다.
그렇다고 대학교에서 따로 문제를 내서도 안 되고
현재 논술 전형도 안된다고 말한다. - 현재 논술 전형은 이미 답이 정해진 논술 시험이므로 IB에서 보는 시험과는 다르다고 한다...
결국에는 수능과 내신을 모두 서논술형 평가와 수행평가로 시스템을 개편하여 학교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평가할 수 있는 평가 패러다임의 혁신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입시는 서논술형+수행평가의 학교 내신과 IB에서 진행하는 논술형 외부시험을 모두 반영하도록 주장한다.)
수업에서는 정답이 정해진 지식을 주입하는 식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탐구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생각도 존중하고 사고력도 기르는 토론식 / 프로젝트형 수업을 강조한다.
이렇게 교육과정-수업-평가를 혁신하여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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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주장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거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제 단순한 지식 암기로는 사회에서 한자리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보다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중요하다.
선다형보다는 서논술형 및 수행평가가 이러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더욱 효과적인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관건은 그래서 현재 그러한 교육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대학교나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항상 학습자 중심 수업, 지속적인 피드백, 정성적 평가, 직접 평가, 과정 중심 평가 등이 중요하다고 배워왔으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이것을 실현하기가 매우 힘들다.
첫째. 교원 한 명당 맡아서 가르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중학교 3학년에서 글쓰기 수업을 한 단원한다고 가정해보자.
작년 기준 교사가 봐야하는 글의 갯수는 30명*8반 = 약 240개다. 아이들에게 A4 반장짜리 글을 쓰라고만 해도 교사가 봐야하는 글은 A4 120쪽이다.
말듣읽쓰 기능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피드백과 이를 반영한 수정이다.
부족한 점을 스스로 혹은 동료 및 교사와 함께 찾아보고, 이를 산출물에서 수정하고 나아가 수행 과정에서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 과정을 일회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반복해야한다.
그러면 교사는 총 240명의 글을 읽어보고 개별적인 피드백을 한 후에, 적절하게 반영하였는지, 수정이 잘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해야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내실 있게 운영하기에 시수와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속한 교육지원청은 교원 수를 줄이고만 있다.
당장 올해도 우리학교 근처에 사립학교가 사라지면서 그 인원이 유입되어 전체 반의 수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교원을 더 주지 않아 차라리 과밀학급을 선택하게 된 상황이다.
이렇게 교원을 줄여 학습자 중심 수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면서 어떻게 IB와 같은 교육과정을 시행하라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지금과 같이 교사 한 명당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이 25명 이상씩 되면, 절대로 IB와 같은 교육은 할 수 없다.
둘째. 현재 교육수요자가 서논술형, 수행평가를 선호하지 않는다.
관리자의 요구로 선다형 고사를 평가에 포함하는 교과가 적지 않다.
국어 교과의 경우, '지식'이 중요한 영역은 매우 적다.
문법의 경우 약간의 암기지식 필요하지만, 이러한 지식이 실제 언어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나타나는지 분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지식에서 학습이 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말듣읽쓰의 영역은 지식보다는 기능이 중요하다.
학습자의 수행을 교사가 직접 관찰하고 피드백이 이루어져야 직접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문법 단원이 포함되어있지 않으면, 굳이 지필평가를 보지 않아도 수행평가로 충분히 아이들의 학습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필평가를 보지 않고, 수행평가 100%로 평가 계획을 냈을 때 항상 관리자에게 반려당했다.
교과 특성을 고려하여 교과에서 결정한 평가계획을 관리자가 특별한 이유없이 관여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 이유는 어김없이 - 학부모가 지필평가를 원하기 때문에 지필평가(흔히 말하는 고사)를 보라는 요구였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지적하는 -현재 학교 내신에서 선다형 평가가 주를 이룬다는 내용은 중학교에는 해당하지 않으며,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교사의 의견보다는 교육수요자(학부모)와 관리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교육평가자(혹은 시험채점관)의 권위가 낮다.
서논술형 평가를 꺼려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는 평가자의 전문성과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채점결과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는데,
현재 공교육은 '평가자의 전문성' 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가자의 전문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선다형 문제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선다형 문제는 -말 그래도 정답에 해당하는 보기를 고르는 문제-로 정해진 정답이 있어야하고, 문제는 정답을 제외한 보기는 답에서 배제하도록 발문되어야 한다.
문제에 대한 답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답이 아닌 보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꽤나 힘든데.
특히 매력적인 오답을 만들어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해야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롭다.
따라서 선다형 시험은 오히려 문제 출제 자체에는 품이 더 많이 든다.
(서논술형은 문제 출제보다도 채점 기준 수립 및 채점에 더 품이 많이 든다)
매 고사마다 교사는 오류 없는 문제를 내기 위해 보고 또 보고, 검토하고 또 검토한다.
하지만 고사를 출제하는 기한은 짧고, 교사가 수업/평가만의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며, 검토를 하는 교사의 수도 매우 한정되어 있다보니 고사에서 오류가 있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고사가 뭐라고.
고사에서의 오류는, 마치 신성한 무언가에 오물을 묻힌 것마냥 교사를 질책한다.
오류를 만들어낸 교사는 한순간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안 좋은 평판을 가지게 된다.
그동안 수업시간에 만들어온 교사의 수업전문성과 학생과의 라포는 고사에서 저지른 한번의 실수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매년 학교 성적에 목매는 학생은 자신이 틀린 문제에 혹시라도 교사가 실수를 저질러서 점수를 조금 더 받을 기회가 생기지는 않을까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살핀다.
수업시간에 다루지 않았다고 우기기도 부지기수이다.
일부 반에선 시험시간에 나온 표현을 그대로 표현하였고, 다른 반에서는 같은 뜻이지만 다른 표현을 하였다고 이의제기를 하기도 한다.
이미 추락한 교권에서 서논술형은 채점과 관련한 민원이 밀려올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이를 감당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이 책에서 말했듯이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채점 기준을 공개해야한다.
하지만 내가 교사가 되기 위해 치 중등 교사 선발 임용 시험만 하더라도 점수만 알려줄 뿐 채점기준이나 모범 답안을 알려주지 않는다.
임용시험이야말로 전체 서논술형 평가로 이루어지며, 지식과 생각을 적절히 융합하여 답을 적어 점수를 받는다.
이미 이렇게 IB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평가 방법으로 시행되고 있는 국가고시가 있다.
그렇다면 이 시험에서 평가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은 왜 고려하지 않는가?
IB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국내의 사례는 살피지 않고, 국외에서만 모범 사례를 찾으려고 하는가?
공교육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해도 된다.
입시 시험이 서논술형 시험으로 개편되면 이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학생을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의 성장하도록 돕는 수업이 되므로, 서구선진국에서는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야 공교육의 정상화된다는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57쪽)
이 의견에서 간과한 점은 중등교육이 고등교육(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은 선택이다.
모든 중고등학생이 대학을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입시 위주의 수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IB 입시 시험이 학생을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방향의 수업을 하기 때문에- 입시 위주의 수업을 해도 된다고 하는 것은 교사의 수업 자율성을 무시하는 사고이다.
서논술형의 입시 시험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은 모든 학생에게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를 준비하는 수업만이 학생을 스스로 사고하고 창의적인 인간으로 길러내는 수업도 아니므로
입시 위주의 수업은 교사에게 결코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교사의 수업 자율성을 방해하고 발목을 잡을 것이다.
중등교육은 입시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야 교사가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담은 수업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다.
만약 중등교육이 입시를 지원해야 한다는 전제를 둔다면, 중등교육은 대학입시제도에 질질 끌려다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말은 곧 교사의 교권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제도에 끌려다니는 게 교육적으로는 왜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학교육과 중등교육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한다.
중등교육이 대학교육과 가장 다른 점은
-교육대상자의 인지적 성장뿐만 아니라 인격과 도덕성, 감성과 감정 등을 모두 포함한 전인적 성장을 꾀한다는 것이다.
많은 중등교육 교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생활/인성교육' 이다.
현재 중학교 자녀를 둔 대부분의 부모들은 70-80년대생이다. 이들이 학생이었을 때,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우등반을 만들고, 우등반에게 뱃지를 채워주었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는 뱃지라는 완장을 채워주고, 그 동네에선 이 아이들이 말썽을 피워도 조금 눈감아 주는 것쯤은 흔한 일이었다.
(심지어 우등반에서 떨어지면 뱃지는 반납해야했다.)
당연히 이렇게 공부만 잘하면 장땡인 시절은 이미 지났지만, 그런 시절을 보냈던 부모들은 왜곡된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자녀의 성적에만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교사는 부모의 잘못된 가치관을 체득한 학생들의 사고방식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과 상담을 구안하는 데에 힘쓰고, 공교육은 인성과 정의적 영역에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점점 많은 파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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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해도 학부모 상담에서 자녀가 학교에서 어떤 수업 태도를 보이는지, 인격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부모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수첩을 들고 앉아서 -우리 아이는 IT 계열로 보내고 싶다는 둥, 자사고를 보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냐는 둥의 질문뿐이다. (이런 경향은 심지어 14살, 중1 아이를 둔 경우 더 심하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공부만 잘하면 되지.'라는 사고를 그대로 배워온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입시'를 한다며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심지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반고를 진학하지 않고 특수목적고 입시를 준비하는 자신이 남다르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가 작년에 맡았던 동아리의 부장이었던 학생 Y는 예고를 준비한다며 2학기 내내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부장의 빈자리를 다른 부원들이 채워야만 했다. (Y의 결석 사유는 대부분이 미인정이었다)
입시가 끝나고 동아리 시간에 돌아온 Y는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동안 부장의 자리를 채워준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한다는 나의 지도에 투덜거리기만 했다.
학교를 무단으로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Y는 '저 입시하느라 못 나온 건데요?'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 아이는 무단결석뿐만 아니라 질병결석이나 생리결석도 매달 서류상 가능한 대로 썼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아이는 부모에게 거짓말을 배웠다. 아주 뻔뻔하고 이기적인 거짓말을.
Y는 3학년 2학기 학기말 나의 수업시간에 잠만 잤다. (조는 것도 아니고 패딩 모자를 뒤집어쓰고 가방을 베고 잤다.)
아이를 깨워서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데리고 와 지도를 했다.
나의 지도 내용을 요약하자면 '불성실한 태도는 버릇이 된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주변 평판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너를 평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서 행동하라' 였다. (인성적인 부분을 이야기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아서, 차라리 성과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를 설득하는 편이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그러자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자신은 잘 하려고 하는데 왜 그러냐며 너무 힘들다고 하였다.
내가 힘든 걸 몰라줘서 미안하다며, 수업시간에 다른 부담은 주지 않을테니 자지만 말라고 타이르자 Y는 눈물을 더 많이 계속 흘렸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자, Y가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서 입시를 준비한 것이 아이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아이는 자신이 예고에 가야하는 이유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야하는 이유를- 성공한 화가가 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학교에서 예고입시를 지원해주지 않아 학교수업도 포기해가면서 학원을 다녀야했던 Y를 안타까워 해야할까?
아니면 학교생활만으로 예고에 입학할 수 없는 현행 입시제도를 안타까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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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공교육이 입시 지원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입시학원에 매달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리적 순서가 틀렸다.
상급학교가 학생들의 성과 위주의 평가를 입시에 반영하기 때문에,
학생의 학업적 성취만을 다룰 수 없는 공교육에서 입시 지원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학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교사의 관찰 내용과 정성 평가는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다.
(서논술 평가, 수행평가를 진행해도 IB 대입제도에서 내신은 점수로 환산되어 부여된다)
예를 들어, 담임이 작성하는 행동발달특성상황은 상급학교 진학 시에 반영되지 않으며 학습자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반려당한다. -개인의 감정이 반영되거나 공정성을 해친다는 이유/ 혹은 부정이나 비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공교육에서의 생활 전반이 (단순히 성적뿐만 아니라) 상급학교 진학/입시에 반영된다면,
애초에 공교육에서 입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 받을 이유도, 입시 위주의 수업을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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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담임을 할 때 학생과 성적 관련 상담은 잘 하지 않는다.
담임반 아이를 대할 때 머리 위로 점수가 보이는 걸 경계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적도 대강 파악만 해두지 자세하게 확인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불량한 태도를 보여도 점수가 좋은 아이들이 있고,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담임반 생활지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책임과 존중'이다. 아이들이 가장 크게 혼날 때는 교사에게 예의 없이 행동했을 때이다.
교과 지도를 할 때에도 과제를 하지 않거나, 수행평가를 백지로 낸 것에 대해서는 나무라지 않는다.
대놓고 엎드려서 자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 혹은 교사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고 질문을 하는 등의 경우에만 지도를 한다.
이유는 학업 성적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보다 도덕적, 사회적 역량이 학생이 삶을 주도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 훨씬 중요한, 변하지 않는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업적 성과가 모든 학생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초학력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격려만 할뿐 성적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생각한다면 공교육은 입시 위주의 수업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공교육의 가치는 입시와 관련 없다. 입시 제도가 공교육 체제와 결과를 학생의 전인적인 성장 측면에서 다방면으로 비중있게 반영해야 사교육이 사라지지,
공교육 교육과정이 입시 제도에 맞춰봤자 사교육이 사라지진 않는다....(이건 너무 간단한 논리인데..?)
현재 교원으로 선발되는 교사들은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다.
야 이 짱구야. 이들의 교육이 가치없다고 폄하하지 말고, 공교육의 권위를 세워줄 궁리를 했으면 한다.
학교교육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며, 그 자체로 권위가 있어야 한다.
입시 제도와 시험이 따로 존재하고, 학교 교육이 이를 반영한 수업을 해야한다면...
그 입시 제도와 시험이 아무리 좋더라도 교사는 정해진 수업을 해야하고,
교권은 지금과 같이 바닥에서 뒹굴 것이다.
다소 정리되지 않은 글이 되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1. IB가 좋은 거 알겠는데,,, 왜 하필 꼭 IB를 해야하는 건데?
2.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교육과정을 바꾸자는 거야, 수업지도안을 준다는 거야, 입시제도를 바꾸자는 거야? 하나씩 말해봐
였다.
책을 쓴 목적이 우리나라에 IB를 도입하자고 설득하는 것 같은데, 논리적 흐름이 다소 뒤죽박죽이라 혼란스러웠다.
이 책에선 해소할 수 없는 IB와 관련하여 궁금한 것이 많아서 관련 책을 두 권 더 샀다.
26살, 어린 나이로 임용이 되면서 '설마 내가 이런 말을 진짜로 듣겠어?' 싶은 말들을 반전없이 들어왔다.
가장 흔히 듣는 말은 '1등 신붓감이네.'.
저 과일도 깎을 줄 모르는데요?
이 말의 의미가 -여자가 공무원이니 출산을 해도 짤릴 걱정이 없어 출산 후 맞벌이가 가능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무리없이 쓸 수 있으며 방학 때에도 육아와 가사노동을 도맡아 할 수 있고, 일찍 퇴근하니까 역시나 그만큼 육아와 집안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이는 그다지 크지 않아 남편의 기를 죽이지 않고, 맞벌이와 육아, 집안일을 해내야 하는 직업. 게다가 교육자니까 헌신적으로 아이교육에 힘쓰겠지? - 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인정한다.
물론 1등 신붓감이라는 말도 학창시절내내 남들 놀 때 공부하고,
고시생 시절에는 샤워하거나 잠들기 전에도 시험 범위를 중얼거리며 공부하여 중등임용시험에 합격한 것을 고작 신붓감으로 폄하하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지만.
(내가 합격했다고 해서 중등임용시험이 별거 아니라고 겸손 떨고 싶은 마음은 없다. 중등임용시험 되기 정말 어렵다.)
이보다 더 최악인 말이 있다.
나는 26살이 되던 해에 임용에 합격했다.
교사는 직업 특성상 수습기간이라는 게 없다.
1월까지만 해도 추리닝 입고 머리도 대충 빗고 다니던 고시생이, 두 달만에 갑자기 반듯한 교사 행세를 해야한다.
많은 신규 선생님들이 눈물을 머금고 3-4월내내 초과근무를 하며 스스로 업무를 익힌다.
그리고 교사들이 기피하는 새로운 사업이나 전임자가 없는 어려운 사업 등을 신규에게 떠넘기는 일도 많기 때문에 _ 실제로 알려줄 수 있는 선배교사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신규인 해에는 심지어 초과근무를 못 달게 하는 관리자때문에 수당도 받지 못하고 매일같이 저녁 9시까지 남아 업무를 보던 연수원 동기선생님도 있었다.
신규 발령 학교가 발표되고 나서 신학기 워크숍에 가보니 이미 업무분장이 다 짜여진 상태였다.
내가 발령 첫 해에 담임을 맡은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신규교사들이 발령을 받자마자 담임업무를 맡게 된다. 담임은 모든 교사가 기피하고... 신규교사는 애초에 업무분장이 끝나고 발령을 받기 때문에 비담임을 희망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도 당연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냥 당연히 젊은 사람이 담임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들과 라포 형성도 쉽고, 여러 가지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해보거나 학생과의 상호작용 경험을 기르기에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26살이었다.
대한민국 여성은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24살. 초수에 합격에도 24살. 재수를 하면 25살.
나는 대학생때 1년 휴학을 하고, 임용은 재수를 해서 26살에 합격했다.
내가 애가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애초에 전제 자체가 틀렸다.
교사는 아이를 낳는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영역은 양육의 영역이지 교육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육자다.
나는 교육전문가인데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나에게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뭘까?
아이를 낳는다고 교육 전문성이 훌쩍 올라갈까?
아이를 낳은 교사가 그렇지 않은 교사보다 담임 업무나 학부모 상담을 더 잘할까?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들어야할 만큼- 교사로서 아이를 낳아봄으로써 깨닫고 알아야할 게 많은 걸까?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면.
출산 경험이 없는 교사를 교육의 최전선에 앞세우지말고 국가 차원에서 아이를 낳아본 교사만 담임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40대 이상의 미혼 교사나 아이가 없는 기혼 교사들도 꼭 배제해야한다.
(물론 절대로 진심이 아니다. 나도 담임 잘 할 수 있다. 오히려 육아시간이 필요한 선생님들께 담임 업무를 드리는 건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담임교사는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초중과정은 의무교육이다.
공교육은 나라가 제도적으로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담임교사는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한 국민에게 보다 바람직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리일 뿐이지, 학교에 있는 동안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육체제가 싫으면 홈스쿨링을 하면 된다)
교사가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교사에게 부모가 되는 경험은 직업상의 유의미한 변화를 주지 않는다.
교사를 직업적 전문성 측면에서 평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를 낳은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 사이에 '교육자'로서 달라지는 점은 없다.
교사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도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교육적 측면에서 헤아리고, 교육적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참으로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반전은. 내가 저 말을 교감선생님께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신규 한 해동안 무려 네 번이나. (이유는 가지각색인데 매년 툭하면 말해서 기억도 안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