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0~40대 교사라면 피할 수 없는 이벤트가 있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요상한 입시제도와 대학진학에 대한 뒤틀린 가치관이 만나 수능날은 일년 중 온국민이 제일 조심스러운 하루가 되었다.

수능 듣기 평가 시간 35분간 국내 전 지역에서 (비상 긴급 상황을 제외하고)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행적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말 그대로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인데, 

어째서인지 중등교육 종사자들이 감독관으로 위촉되어 (라고 쓰고 착출이라고 읽는다) 수능감독을 해야한다. 

 

수능감독은 누가 들어가든 부담스러운 자리일 것이다.

그러나 수능감독관은 '위촉'되는 것치고는 당사자의 승낙 과정이 없다. 

보통은 '나이순'으로 단위학교 혹은 교육지원청에서 대상 명단을 작성한다.

_ 한 명의 감독관이 4-5개의 과목을 감독해야하는데, 왜 감독관을 늘려 감독관 1인의 부담을 줄이지 않는지 의문이다.

 

수능감독관은 승낙과정은커녕 위촉을 거절하려면 서류가 필요한데, 요구하는 서류가 꽤나 까다롭다. 

건강 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종합병원의 진단서'를 제출해야만 수능감독 위촉명단에서 제외될 수 있다. 

 

개인병원의 진단서는 안된다. 꼭 종합병원이어야 한다. 

 

공무원이 병휴직을 하는 데에도 종합병원의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는데, 수능감독에서 제외되려면 이 서류가 필요하다. 

정말... 이상한 기준이다. 


 

나의 첫 공황발작은 2021년 11월. 수능 일주일전이었다. 

물론 나는 학교에서 거의 막내로 이미 수능감독관 명단에 올라있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식은땀이 나며, 세상에 심장과 나만 있는 것 같은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수능감독...나 이거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웠다. 

시험 시간에 공황이 오거나 불안증세가 심해져서 숨이라도 몰아쉬고 소음이라도 내면 소송감이다. 

당시 나는 지하철을 타면 '빨리 집에 들어가야겠다. 사람이 너무 많다. 여기서 벗어나서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수준으로 불안 증세가 심했다. 

 

하지만 당장 나에겐 종합병원 진단서도 없었을 뿐더러,

교육청에 명단을 제출 하기 전에 진단서를 냈어야하기 때문에, 진단서가 있어봤자 이미 소용 없어진 후였다. 

- 게다가 정신과는 진단서를 잘 써주지 않는다. 최소 3개월 이상 통원 치료를 받아야 진단서를 받을 수 있는데, 그 마저도 안 써주는 선생님들도 많다. 아마 환자의 말을 토대로 임상적인 진단을 내리기 때문일 것이다. _ 진단서는 법적 효력이 있기 때문에 악용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학교 측에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수능감독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일단 예비소집 (수능시험장 학교)에 가서 예비감독관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예비소집(수능시험장 학교)에 가서 난..... 혼이 났다. 

이제와서 못하겠다고 하면 어쩌냐고, 그 학교 교감선생님께 짜증이 잔뜩 섞인 타박을 들었다.

우리 학교에서 책임지고 대체 감독관을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별 수 없으니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심란해 있는 나에게 교장선생님은 말하셨다. 

" 선생님, 토익 감독은 잘 하지 않았어? "

 

기가 막혔다. 학교에선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나보고 직접 다음 순번(역시나 나이순)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라고 하였다. 

 

절박한 마음으로 40대 옆부장 선생님 J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대신 가주실 수 없냐고 울먹거리며 이야기했다.  

선생님 J 는 안타까워하거나 걱정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이미 수능날 자녀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해서, 숙소 등을 다 예약해 놓았고 취소할 수 없어서 안된다고 거절하셨다. 

나는 교직 3년차에 교실에서 공황발작이 왔는데, 옆 부서 선생님은 여행을 가셔야했다. 

좌절하는 나에게 선생님 J는 말했다. 

" 선생님, 토익 감독은 잘 하지 않았어? "

 

내가 꾀병이었다고 생각하신 걸까?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셨으면. 아프다는 사람에게 저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땐 안 아팠고, 지금은 아프다고요. 

 

결국은 다른 기간제 선생님께서 나 대신 감독을 가시게 되었다. 

그 선생님도 여행을 계획해 두셨었다. 기간제 교사였기 때문에 거절하기 힘드셨을 거라 생각한다.


 

 

첫 공황발작에 충격 받았던 나는 수능일 다음 주에 일주일간 병가를 냈다. 

 

병가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보니,

나의 부탁을 거절했던 부장 선생님은 급식실에서 -나의 부탁이 황당했다는 듯- 떠벌려 이야기했고, 

내가 비운 담임 자리를 대신하게 된 부담임 선생님에게 경쾌한 목소리로 -담임을 해보니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했다. (그 부담임 선생님은 담임 경력이 없는 신규 선생님이었다.)

아픈 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경솔한 행동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님 J는 내가 교무실을 비우기만 하면, 어디선가 귀신같이 나타나서 나의 뒷담을 하곤 했다고 한다. 

임용이 되고 나서 그동안 경험한 학교는 ... 참 치사하고 유치한 집단이었다. 

(나를 비롯한 젊은 교사들을 뒤에서 신나게 까대던 선생님 J와 그들의 동료이야기는 차차 기록하도록 하겠다)

 

선생님 J가 우습게 알던 내 증상은, 2년 넘게 사라지지 않고 내 생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병으로 남아있다. 

 


 

선생님 J를 생각하면 아직도 나는 종종 눈물이 난다. 

그 사람은 한번이라도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본 적이 있을까? 사무치게 억울하다. 

 

교육청에서 중등교사에게 수능감독을 하도록 하는 것은 다른 층위의 문제이다. 

나에게 상처를 준 건 수능감독 업무 자체가 아니라, 

수능감독과 관련하여 학교와 선생님 J가 나에게 보인 태도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J를 미워하기로,

아니 ... 그 사람 자체가 미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옹졸함을 안타까워하기로 했다. 

나는 그래도 마땅하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2023년 수능. 나는 F코드의 '종합병원 진단서'를 제출했다. 

혹자는 겉으로 꽤나 멀쩡해 보이는 -새파랗게 젊은- 내가 수능감독에서 빠진 것에 대해 수근거릴 것이 분명하다. 

근데 어쩌라고. 

난 건강해서 무슨 일이든 문제없이 해내는 사람이고 싶은데. 바꿀래? 

작년 12월말 방학을 앞두고 있던 나는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날은 너무 아픈 날이었다. 치밀어 오르는 우울이 나를 덮치고, 자살사고가 시작되었다.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다. 많다고 해서 쉽게 넘길 만한 증상은 아니다. 

한번의 기도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기도를 하면, 그날 그 사람이 숨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일주일간 병가를 내겠다고 했다. 

이때 내가 정 보강 할 사람이 없으면 나가서 최대한 수업을 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게 오해를 일으킨 것 같다. 

학교에선 보강을 넣어주는 걸 부담스러워 했고, 쉬어보고 괜찮으면 나와서 수업을 하라고 했다.

-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쉬어보고 나오라는 게 아니라, 쉬고 늦게라도 꼭 나와서 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병가는 이미 결재가 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학교에 알리지 않고 나가지 않은 이상한 사람이 됐다.)

 

물론 억지로 나가려면 나갈 수 있다. 정신병이라는 게 앓아눕는 병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아주 아프다. 내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상당히 억울하고 불편했다. 

 


 

 

2021년 11월 수능 며칠전, 나에게 공황발작이 일어났다. 

당시 코로나 사태로 원격수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교실에 혼자 앉아 있던 나는 갑자기 온몸에 식은 땀이 나며 손이 벌벌 떨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증상을 겪었다. 

급하게 교무실에 있던 청심환 같은 생약을 찾아 입에 털어넣었다. 약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 선생님이 교무실에 들어오셨다. 나는 갑자기 그 순간 그자리에서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고, 딱히 그 선생님을 싫어하지도 않는데 도망가고 싶다니! 

그래서 난 병원을 갔다. 아무래도 내가 아픈 것 같았다. 

 

(내가 아팠던 이유는... 이 글에서 모두 쓰기에는 너무 많아 차차 기록하고자 한다. 

글을 쓰는 목적은 첫째는 해소이고, 둘째는 기록이다. 한 가지 더 바라자면 나와 비슷한 아픔이나 어려움을 겪는 젊은 교사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결국은 한 학기정도는 버텨냈지만 2022학년도 2학기에 휴직을 하게 되었다. 

1년간 휴직을 한 후, 복직하여 보낸 3개월은 꽤나 버거웠다. 

학교는 아직 나에게 무거운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이었고, 나는 겨우겨우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치우며 시간을 보냈다. 진료 예약일까지 채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에 가길 일쑤였다. 

 

하지만 내가 아픈 걸 사람들은 잘 몰랐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단순하다. 

내가 병색을 가리기위해 화장을 하면 좋아보인다고 하고, 화장을 안하고 가면 아파보인다고 한다.

(정말 너무 아파보여서 화장을 할 때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살쪘다고 좋아보인다고 한다. (항우울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체중 증가이다.) 

 


 

 

아직 나는 매일 15알정도의 약을 삼키고, 약 없이는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는 중증기분장애 환자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동시에 겪고 있고, 종종 경도의 조증 증상도 나타난다. 2년이 넘게 치료받고 있는데 영 기복이 심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글을 통해 앞으로 차근차근 

젊은 여성이, 젊은 교사가, 젊은 여교사가 왜 우울증에 걸리는지. 

교직 사회는 젊은 여교사에게 어떤 공간인지 

내가 느낀 바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2024년 1월 21일. 우울증에 걸린 20대 여교사의 이야기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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