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현대인들의 고민들은 다 가졌다/학교 이야기

앞으로 애 낳아본 사람만 담임하라고 해

둥근 마음 지연 2024. 1. 24. 23:23

젊은 여교사로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일까?

26살, 어린 나이로 임용이 되면서 '설마 내가 이런 말을 진짜로 듣겠어?' 싶은 말들을 반전없이 들어왔다. 

 

가장 흔히 듣는 말은 '1등 신붓감이네.'. 

저 과일도 깎을 줄 모르는데요?  

이 말의 의미가 -여자가 공무원이니 출산을 해도 짤릴 걱정이 없어 출산 후 맞벌이가 가능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무리없이 쓸 수 있으며 방학 때에도 육아와 가사노동을 도맡아 할 수 있고, 일찍 퇴근하니까 역시나 그만큼 육아와 집안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이는 그다지 크지 않아 남편의 기를 죽이지 않고, 맞벌이와 육아, 집안일을 해내야 하는 직업. 게다가 교육자니까 헌신적으로 아이교육에 힘쓰겠지? - 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인정한다. 

 

물론 1등 신붓감이라는 말도 학창시절내내 남들 놀 때 공부하고,

고시생 시절에는 샤워하거나 잠들기 전에도 시험 범위를 중얼거리며 공부하여 중등임용시험에 합격한 것을 고작 신붓감으로 폄하하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지만. 

(내가 합격했다고 해서 중등임용시험이 별거 아니라고 겸손 떨고 싶은 마음은 없다. 중등임용시험 되기 정말 어렵다.)

 

이보다 더 최악인 말이 있다. 


 

나는 26살이 되던 해에 임용에 합격했다. 

 

교사는 직업 특성상 수습기간이라는 게 없다. 

1월까지만 해도 추리닝 입고 머리도 대충 빗고 다니던 고시생이, 두 달만에 갑자기 반듯한 교사 행세를 해야한다.

많은 신규 선생님들이 눈물을 머금고 3-4월내내 초과근무를 하며 스스로 업무를 익힌다. 

그리고 교사들이 기피하는 새로운 사업이나 전임자가 없는 어려운 사업 등을 신규에게 떠넘기는 일도 많기 때문에 _ 실제로 알려줄 수 있는 선배교사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신규인 해에는 심지어 초과근무를 못 달게 하는 관리자때문에 수당도 받지 못하고 매일같이 저녁 9시까지 남아 업무를 보던 연수원 동기선생님도 있었다.

 

신규 발령 학교가 발표되고 나서 신학기 워크숍에 가보니 이미 업무분장이 다 짜여진 상태였다. 

내가 발령 첫 해에 담임을 맡은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신규교사들이 발령을 받자마자 담임업무를 맡게 된다. 담임은 모든 교사가 기피하고... 신규교사는 애초에 업무분장이 끝나고 발령을 받기 때문에 비담임을 희망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도 당연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냥 당연히 젊은 사람이 담임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들과 라포 형성도 쉽고, 여러 가지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해보거나 학생과의 상호작용 경험을 기르기에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는 26살이었다. 

대한민국 여성은 대학을 졸업하면 보통 24살. 초수에 합격에도 24살. 재수를 하면 25살. 

나는 대학생때 1년 휴학을 하고, 임용은 재수를 해서 26살에 합격했다. 

 

내가 애가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애초에 전제 자체가 틀렸다. 

교사는 아이를 낳는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영역은 양육의 영역이지 교육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는 교육자다. 

나는 교육전문가인데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나에게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뭘까? 

 

아이를 낳는다고 교육 전문성이 훌쩍 올라갈까? 

아이를 낳은 교사가 그렇지 않은 교사보다 담임 업무나 학부모 상담을 더 잘할까?

'선생님이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을 들어야할 만큼- 교사로서 아이를 낳아봄으로써 깨닫고 알아야할 게 많은 걸까?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면. 

출산 경험이 없는 교사를 교육의 최전선에 앞세우지말고 국가 차원에서 아이를 낳아본 교사만 담임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40대 이상의 미혼 교사나 아이가 없는 기혼 교사들도 꼭 배제해야한다.

(물론 절대로 진심이 아니다. 나도 담임 잘 할 수 있다. 오히려 육아시간이 필요한 선생님들께 담임 업무를 드리는 건 지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담임교사는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초중과정은 의무교육이다.

공교육은 나라가 제도적으로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까 담임교사는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한 국민에게 보다 바람직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리일 뿐이지, 학교에 있는 동안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육체제가 싫으면 홈스쿨링을 하면 된다)

 

교사가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교사에게 부모가 되는 경험은 직업상의 유의미한 변화를 주지 않는다. 

교사를 직업적 전문성 측면에서 평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를 낳은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 사이에 '교육자'로서 달라지는 점은 없다. 

교사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도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교육적 측면에서 헤아리고, 교육적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참으로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반전은. 내가 저 말을 교감선생님께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신규 한 해동안 무려 네 번이나. (이유는 가지각색인데 매년 툭하면 말해서 기억도 안남.)

다행히도 학부모님께 들은 적은 없다.

 

난 이제 서른 한 살인데 아직도 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