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나는 숨쉬고, 그렇게 지내기
반성문을 쓴 이후로 죽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살아보고자 한다면, 딱히 그건 또 아닌데 말이다.
우울한 날이 있다. 일주일에 한두번정도.
가슴이 아파서, 불안해서, 그런데 왜 불안한 건지도 몰라서, 이유 없이 치밀어오르는 우울감 때문에
그렇게 누워서 한없이 우울해하는 날이 있다.
아무리 우울해도 죽고 싶은 생각은 안 난다. 묘하지.
버릇처럼 하던 말이, '나는 내일 죽어도 안 이상한 사람이야.' 였는데.
이제 죽음은 나와 많이 멀어졌다. 그러니까, 죽음에 무관심해졌다.
죽음에 대한 갈망을 딱히 떨쳐냈다거나 극복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어졌다.
죽을 이유를 못 찾겠다.
살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찾았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그건 또 아닌데 말이다.
그냥 흘러간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숨쉬고. 그렇게 가만히 가만히 있다. 그렇게 존재하고 살고 있다.
대학시절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이 유행이었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잠시 들춰보고서는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가?' 고민이 생겼었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알딸딸 취한 상태로 신촌 거리를 거닐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지연아, 자존감 그거. 계속 생각하다보면 더 자신 없어진대. 차라리 그 생각을 하지 말아봐.' 했다.
무관심해지니 이제 알겠다.
무관심하면 생각도 안 나고, 생각이 안 나면 무관심해진다. 서로서로 그렇게 끌어당기면서 머물러 있던 것.
이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프더라도 살아 있을 거다. 왜냐면. 살고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죽을 생각은 없어서. 딱히. 딱히 없어서...
오늘 나는 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애인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색칠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그럴 거고. 매일이 그렇겠지.
별다른 거 안 해도 되잖아?
존재만 해도 되잖아.
존재만으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존재하고. 시간은 흐르고. 나는 숨쉬고. 그렇게 지내자.